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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취임한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가 ‘3개의 화살(무제한 양적완화, 공격적 재정지출, 구조 개혁)’을 들고 나오자 외국인투자가는 환호했다. 해외 투자가는 2013년 한 해에만 15조 엔(약 135조 원)어치의 일본 주식을 순매수했다. 하지만 긍정적인 흐름은 오래가지 않았다. 구조 개혁의 성과가 미흡하자 외국인투자가들은 일본 주식시장을 떠나기 시작했다. 지지부진한 주가에 결국 일본은행(BOJ)까지 나섰고 그렇게 BOJ가 2013년부터 최근까지 사들인 상장지수펀드(ETF) 규모는 35조 엔(누계)에 이르렀다.
그랬던 일본 주식시장이 쾌속 질주를 하고 있다. 지난해 BOJ가 ETF 순매도로 돌아섰음에도 11일 닛케이225지수는 1.77% 오른 3만 5049.86에 마감해 3만 5000선을 돌파했다. 버블 붕괴 직후인 1990년 2월 이후 33년 11개월 만에 최고치다.
일단 당국이 기업들에 주주 친화 정책을 펴라고 압박한 것이 효과를 발휘했다. 도쿄증권거래소는 지난해 4월 상장사 3300여 곳에 공문을 보내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를 밑돌 경우 주가를 올리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공시하고 실행하라”고 주문했다. PBR은 주가를 주당 순자산으로 나눈 것으로, 1 미만이면 현 주가가 장부상 가치에도 못 미칠 정도로 저평가돼 있다는 의미다. 이에 지난해 도요타가 1000억 엔 규모의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발표하는 등 2023년 기업의 총자사주 매입 규모는 4조 9012억 엔(약 44조 원)에 달했다. 지난해 자사주 매입 계획을 공표한 기업 중 30%는 지난 5년간 관련 움직임이 전혀 없었던 기업이었다.
해외 투자가들이 돌아온 영향도 크다. 전날 도쿄증권거래소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 투자가는 일본 주식을 3조 1215억 엔(약 28조 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이는 2013년 이후 10년 만에 최대 규모다. 외국인투자가들은 지난해 가파르게 진행된 엔화 약세로 기업 실적이 개선되고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까지 일본 주식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자 강한 매수세를 보였다.
디플레이션 탈출에 대한 기대감도 작용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의 마사시 아쿠츠 수석전략가는 “춘투(봄철 노사 임금협상)에서 임금 인상률이 지난해 수준을 넘어서며 올해 중반에는 실질임금이 증가세로 전환돼 인플레이션이 정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 물가가 오르면 돈의 가치는 떨어진다. 이에 기업들이 현금을 쌓아놓기보다는 적극적인 투자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확산하며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 외에 소액투자비과세제도(NISA)의 절세 혜택을 올해부터 대폭 확대한 것도 개인들의 주식 투자를 늘려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피델리티투자신탁의 시게미 요시노리 전략가는 “연말에는 닛케이225가 4만까지 상승해 역대 최고가(1989년 12월 29일의 3만 8916)를 넘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지난해 외국인투자가들의 일본 주식 순매수가 늘었지만 과거에 비해 절대 규모는 크지 않아 올해 본격화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지난해 2조 9192억 엔어치의 주식을 순매도한 개미투자자들이 올해는 NISA를 등에 업고 지속적으로 주식에 투자할 수 있다.
다만 하반기 미국은 금리를 내리는 반면 일본은 올려서 발생할 엔화 강세, 미국 경기 둔화 등은 리스크 요인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