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데일리 = 이예주 기자] “양규와 김숙흥은 화살을 고슴도치처럼 온몸에 맞고 함께 전사했다”
2023년 하반기 대한민국에 이순신 장군을 이을 전쟁 영웅이 탄생했다. 순간 시청률 11%(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을 기록한 그의 전사 장면은 대한민국의 안방극장을 애국심으로 뜨겁게 달구며 ‘제사상 인증샷’, ‘프로필 사진 인증샷’ 등의 유행을 낳기도 했다. 바로 ’고려 거란 전쟁’의 양규 장군이다.
9일 마이데일리는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배우 지승현을 만나 KBS 2TV 대하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과 그가 맡은 역 양규 장군, 지승현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펑펑 내리는 눈과 함께 등장한 지승현은 ”마지막 액션 장면을 3일간 찍는데, 그때도 눈이 왔다. 촬영팀에서 눈을 준비했는데 (눈이) 오더라. 현장에서 ’양규 장군님께서 오셨다’고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 아침에도 감독님께서 문자로 ’양규 장군님이 인터뷰한다고 눈이 온다’고 하시더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고려 거란 전쟁’은 고려의 황제 현종(김동준), 그리고 정치 스승이자 고려군 총사령관이었던 강감찬(최수종)의 이야기, 그리고 고려와 거란의 2·3차 전쟁을 다룬 드라마다. 극중 지승현은 작품을 통해 고려의 전쟁 영웅 양규 장군을 열연하며 ‘양규 앓이’, ‘양규 신드롬’으로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양규 장군님이 잘 알려져서 인기를 얻은 것이 가장 좋았어요. 어쨌든 제가 열심히 해서 이뤄진 것 같아서요. 제 마음이 잘 전달이 된 것 같아요. 인터뷰 기사 댓글로 ’양규 장군이 지승현을 살렸네’라는 댓글이 있었는데요, 그 댓글을 보고 시청자 분들께서 제 진심을 잘 느끼셨다고 생각했어요. 감사할 뿐이죠.”
부족한 사료와, 전무했던 초상화. 지승현은 양규 장군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적었던 상태에서 촬영을 시작했다. 그랬기에 늘 그래왔듯 상상을 통해 캐릭터를 그려나갔다.
“연기를 시작하고 다양한 이론을 접하게 되면서 ’상상과 집중’을 통해 캐릭터를 그려나가곤 했어요. 물론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통해 장군의 인간적인 모습을 참고했고, 영화 ’실미도’의 대사로 캐릭터 빌드업에 도움을 받기도 했죠. 그렇지만 혼자서 대본을 다양하게 읽어보고, 그 모습을 찍어보면서 제 안의 양규 장군을 끄집어내는 과정을 반복했어요. 개인적으로는 양규 장군의 초상화가 한국에 남아있지 않아 아쉬웠는데, 오히려 그랬기에 분장팀에서도 그들이 상상하는 ’강인하고 냉정한’ 캐릭터를 잘 표현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그러다 보니 지금에서는 초상화를 못 본 것이 나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품을 통해 ’대하 사극’의 중요성도 깨달았다는 지승현이다.
“미국 같은 경우를 봐도 영웅을 통해 그 시대의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하잖아요? 우리나라에서는 세종 대왕의 ’애민정신’이 유명한데, 그 애민정신은 고려의 양규, 강감찬 등과 같은 사람의 희생을 통해 이어져 왔어요. 조선 세조 때만 해도 양규를 비롯한 여러 장군을 위한 절을 지으려고 했어요. 지금 저희가 이순신 장군을 추앙하는 것처럼요. 그렇게 애민정신이 이어져서 지금의 대한민국까지 온 건데, 이런 것들을 잘 이어가기 위해서는 꾸준히 대하 사극이라는 장르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려 거란 전쟁’처럼 잘 알려지지 않았던 영웅을 발굴해내고, ’코리아’라는 나라가 왜 ’코리아’가 됐는지 알 수 있게끔요. 이런 기획 자체가 ’고려 거란 전쟁’의 기획이기도 했고요.”
지난해 12월 31일 개최된 ’2023 KBS 연기대상’. 지승현은 데뷔 18년 만에 인기상과 우수상을 차지하며 진한 감동을 전했다. 이날 마이데일리는 그과 함께 연기자 지승현의 출발점을 함께 회상했다.
“스물 넷에서 다섯 즈음, ‘자유의 바다에 빠져보지 않은 사람은 자유의 두려움을 모른다’라고 일기장에 적곤 했어요. 자유에 익사할 것만 같은 시간들이었죠. 하고 싶은 건 있는데, 해야 할 것은 없고. 그랬던 어린 시절에 썼던 문구에요. 저는 MBC ’히트’라는 드라마에서 마동석 선배께 한 마디를 건네는 장면으로 데뷔했는데요, 그런 역할들을 많이 했어요. 20부, 혹은 16부 중 한 회에 한 장면만 나오는 거죠. 주인공이 식사하러 왔을 때 서빙하는 역할, 부딪혀서 싸우는 역할…이런 것들요.”
그러던 2009년 11월, 지승현은 영화 ’바람’을 통해 처음으로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게 됐다.
“‘바람’으로 기자 분들과 첫 인터뷰를 했어요. 그 영화로 지면에 제 기사가 걸리던 기억도 나네요. 그런데 그 후에도 단역 밖에 못했어요. 그러다 ’태양의 후예’를 찍게 됐고, 촬영하면서 연기를 그만두려고 하기도 했죠. ’태양의 후예’는 2015년 촬영을 한 후 다음 해에 방영이 됐는데, 굉장히 싼 가격에 4회만 나오다 보니 ’정말 이게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으로 버텼거든요. 그런데 2016년 ’태양의 후예’가 터졌고, 그렇게 버텨오다가 좋은 작품의 조연을 맡게 되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이렇게 시간이 갔네요.”
‘형사록’, ’7인의 탈출’, ’최악의 악’부터 ’연인’과 ’고려 거란 전쟁’까지. 2023년을 ’지승현의 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였다. 18년 간의 꾸준함으로 정상에 오른 그에게, 꿈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을 위한 메시지를 부탁했다.
“최근에 읽은 건데, ’내일이 잘 안 풀릴 때면 타인을 축복하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내가 힘들다고 다른 사람을 질투하면 그 에너지가 다 가는 것 같아요. 그런데 진심으로 타인을 축하하면 제게 그 에너지가 돌아와요. 양규 장군을 알리려고 노력했더니, ’양규 장군이 지승현을 살렸다’는 댓글이 돌아온 것처럼요. 꾸준히 그런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고 책을 읽다 보면 안 좋은 에너지를 떨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거에요.”
“그냥 연기가 좋다. 설명이 잘 안된다”며 순수한 열정을 드러낸 지승현. 그는 여전히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도전 정신이 가득했다.
“가져야 할 마음가짐 10가지를 늘 곁에 붙여두고 자기암시를 하곤 해요. ’나는 세계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배우다’, ’나는 연기를 잘 하는 놈이다’, 이런 것들요. 그만큼 연습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앞으로는 다양하게 열어두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로맨틱 코미디나 판타지 장르에 대한 욕심도 있어요. 확실한 건, 다음 작품은 현대극으로 돌아올게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