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금융권·정치권 등에 따르면 한국수출입은행법(수은법) 개정안이 국회에 장기간 계류하면서 수출금융에 제약을 받게 된 수은과 산업계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일반적으로 방산이나 인프라 등 대규모 사업은 정부 간 계약 성격이 짙고 수출 규모가 커서 수출국에서 정책적으로 금융·보증·보험을 지원하는 게 관례다. 관례대로라면 국내 방산업계가 폴란드와 체결한 무기수출 계약도 수은을 주축으로 수출금융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현재 수은 자본금이 14조7733억원으로 법정자본금의 98.5%까지 차오른 탓에 추가 지원 여력이 없는 것이다. 수은법은 수은의 법정자본금을 15조원으로 정하고 있는데, 2014년 8조원에서 15조원으로 증액된 이후 10년 동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더욱이 수은법 시행령에서 특정 개인·법인에 대한 신용공여 한도를 자기자본의 40%로 규정하고 있어 현재 자본금으로는 대규모 계약을 체결한 기업 등에 대한 수출금융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권고치(13%)를 지켜야 한다는 점도 수은 자본금 상향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다. 수은의 자기자본비율은 2022년 말 13.38%까지 떨어졌지만 지난해 정부로부터 2조원을 출자받으면서 상반기 말 15.07%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나 같은 기간 정책금융 규모도 126조5805억원에서 134조8040억원으로 늘어나고 있어 자본금 추가 확대가 불가피하다.
관련 업계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이 제때 해결되지 못하면 대폴란드 무기 수출 2차 계약이 무산될 가능성도 언급된다. 이에 국회에는 수은 법정자본금 한도를 25조~35조원으로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하는 복수의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3년 이상 소관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수은법 개정을 위한 공감대는 이미 어느 정도 형성된 상태다. 수은은 수출 활력 제고, 유사시 시장 안전판 역할 강화 등을 위해 자본금 한도를 늘려야 한다고 본다. 윤희성 한국수출입은행장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방산 수출 지원을 위해 자본금을 늘리는 게 정공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도 검토보고서를 통해 “수은이 정책금융 수요를 적기에 뒷받침할 수 있도록 법정자본금 규모를 적절히 확대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며 “새로운 수출 산업으로 떠오르는 방산은 민간금융에 더해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이에 더해 향후 사우디아라비아 네옴시티, 우크라이나 전후 재건 등 각지에서 초대형 사업 발주가 예정돼 있어 수은의 역할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또 첨단전략산업에서도 국내 기업의 핵심기술 개발, 인수·합병(M&A) 등 자금 수요 증가가 예상돼 정책금융 여력 확대 필요성도 제기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2020년에도 수은 자본금을 늘리는 내용의 수은법 개정안이 발의됐는데, 한도에 여유가 있다는 이유로 논의가 장기화됐다”며 “이후 3년 새 자본금이 2조3238억원 증가할 정도로 정책금융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어 관련 논의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