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A. 피터슨 브리검 영 대학교 명예교수는 미국의 한국학 권위자다. 유네스코가 발행하는 ‘코리아 저널’ 편집장과 미국 아시아학협회 한국학위원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유교 사회의 창출: 조전 중기 입양제와 상속제의 변화(2000)’ 등 다수 논저도 냈다. 그는 지난해 7월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우물 밖의 개구리(Frog Outside the Well)’에서 골동품 가게에서 구했다는 네모난 판 하나를 소개했다.
“(백자판에 적힌 글에) 사람 이름이 나오고 ‘부인’이라고 적혀 있길래 대충 묘지(墓誌·고인의 행적을 적어 무덤에 함께 묻은 돌이나 도판)가 아닌가 싶었죠. (…) 호조판서, 상당히 높은 벼슬이죠. 반남박씨 박정양. 이 사람이 왜 유명한 사람이냐 하면 미국에 온 첫 번째 대사죠. 중국이 반대해서 밀항처럼 출국했어요. 이것은 박정양의 묘지는 아니고, 그의 부인 거죠. 양주 조씨요.”
초대 주미 전권공사를 지낸 박정양(1841∼1905)의 첫 번째 부인 양주 조씨(1841∼1892) 생애를 기록한 청화백자 묘지 ‘백자청화정부인양주조씨묘지(白磁靑畵貞夫人楊州趙氏墓誌)’였다. 도판 위에 삶과 성품, 가족관계 등이 122자로 쓰여 있다. 양주 조씨는 박정양과 1남 2녀를 두었다. 1892년 숨진 뒤 경기 수원에 묻혔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조씨가 1921년 경기 포천에 있는 박정양의 묘소에 합장됐다”며 “묘지 상태로 미뤄볼 때 합장하기 전에 알 수 없는 이유로 유실됐다고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삶의 발자취를 정리한 귀한 기록이 후손들 품으로 돌아왔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최근 피터슨 교수로부터 묘지를 기증받아 반남박씨 종중에 전달했다고 지난달 31일 전했다. 피터슨 교수는 한국 풀브라이트재단 관리자로 근무한 1978~1983년 서울의 한 골동품 가게에서 묘지를 구매해 약 40년간 보관해왔다. 도판에 적힌 내용을 연구하며 조씨와 조씨 가문에 대해 조사할 만큼 관심을 쏟았다.
귀환은 피터슨 교수가 묘지를 소개하며 후손에게 돌려줄 의사를 밝혀 본격화됐다. 때마침 해당 동영상을 시청한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미국사무소 직원이 피터슨 교수와 한국에 있는 반남박씨 죽천공파 종중을 연결해 기증을 끌어냈다. 지난해 10월에는 양측으로부터 묘지를 임시로 기탁받아 미국 워싱턴 D.C. 주미대한제국공사관에서 열린 한미 수교 140주년 기념 특별전에서 공개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피터슨 교수가 서울 마포구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서 열린 기증식에 참석해 묘지를 후손에게 돌려줄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평소 묘지를 ‘미시즈 조(Mrs. Cho)’라고 부르며 아껴오셨다”며 “아쉬운 마음이 드셨는지 ‘마지막으로 만져봐도 되느냐’고 물은 뒤 한참을 쳐다보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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