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집행부, 문제 제기 조합원에 “노조 근간 흔드는 반 노동자적 행위” 비난
“윤석열 정부 노조말살 와중에…” 운운하며 논란 덮기 시도
결국 노조 집행부 소속 간부 1억4300만원 챙긴 혐의로 구속
연말 지부장 등 집행부 선거 앞두고 현 집행부 입지 ‘흔들’
기아 노조 간부가 입찰 업체들과 짜고 조합원들에게 돌릴 티셔츠 값을 부풀려 1억여원을 챙긴 혐의로 구속된 가운데, 기아 노조(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 기아자동차지부) 집행부는 해당 사안을 무마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조합원들에게 거짓 해명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개별 간부의 일탈로 보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정부의 노조 탄압’ 운운하며 사건을 덮으려고 한 노조 집행부도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연말 지부장 선거를 앞둔 상태에서 현 홍진성 지부장이 이끄는 집행부가 조합원의 신임을 얻을 수 있을지도 관심이다.
3일 업계에 따르면 기아 노조 간부 A씨는 지난 1일 배임수재, 업무상 배임, 입찰방해 등 혐의로 구속됐다.
지난해 9월 기아 노조가 조합원들에게 나눠 줄 단체 티셔츠 2만8200벌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입찰업체와 짜고 원가 1만300원짜리 티셔츠를 1만5400원에 납품하도록 한 뒤 차액을 돌려받는 수법으로 1억4300여만원을 챙긴 혐의다.
이 사건은 올해 초부터 문제시됐다. 지난 1월 일부 조합원이 단체로 제공받은 티셔츠의 낮은 품질을 문제 삼아 국민신문고에 진정을 냈다.
티셔츠의 재질이 상대적으로 값싼 나일론 86%·폴리우레탄 14% 합성인데다가 처음 오토랜드 광명(옛 소하리 공장)에 나눠준 티셔츠에는 의류 업체가 아닌 가구업체 L사의 것이 붙어 있어 논란이 됐다.
이후 광주공장에 배부할 때는 티셔츠에 부착됐던 L사의 라벨를 가위로 잘라 나눠준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더 커졌다.
일부 조합원들은 티셔츠를 찢거나 티셔츠에 ‘이게 1만6000원이냐 X나 줘라’, ‘27대 집행부 정신차렷! 이게 만육천원이냐’ 등의 항의 문구를 써서 사진으로 공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조 집행부는 논란을 덮기에 급급했다. 사건 논란이 불거진 초기인 1월 12일 소식지 ‘미디어 함성’을 통해 “반팔티 사업은 쟁의대책위원회 결정 사항에 의거, 규정과 절차에 맞춰 진행됐고, 한 점의 의혹도 없다”고 반박했다. L사 라벨 부착 문제는 티셔츠 제작사가 L사 협력업체로, 라벨 부착 과정에서 작업자 실수에 따른 것이라며 공문을 통해 명확한 사실을 요청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권이 노동개악으로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시기에 노동조합을 위협하는 행위는 납득할 수 없다”면서 노조의 대정부 투쟁과 연관 지어 논란을 덮겠다는 의도도 드러냈다.
사건을 담당한 경기 광명경찰서가 ‘범죄 혐의가 특정되지 않고 내용이 정확하지 않다’며 진정을 반려시키자 노조 집행부는 더 기세등등해졌다. 2월 14일 소식지 ‘함성소식’을 통해 “절차와 과정에 문제가 없었다는 점이 밝혀진 상태에서 라벨 부착 실수까지 노동조합에 책임을 전가하며 노동조합 존립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를 즉각 멈춰 달라”고 했다.
조합원들이 회계장부 공개를 요구하자 “전국의 모든 노동조합을 부패집단으로 매도하는 윤석열 정권의 민주노조 말살 정책을 시도하는 이 엄중한 시기에 절차와 과정에 전혀 문제가 없는 티셔츠 관련 내용 뿐 아니라 그 어떠한 회계장부도 공식적으로 공개할 수 없다”면서 또다시 정부의 노조탄압 핑계를 댔다. 당시는 정부가 노조 회계의 투명성 확보 차원에서 각 노조에 회계장부 제출을 요구하자 양대 노총인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거부하며 대립하던 시기였다.
3월 10일에는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이 문제가 불거졌다. 대의원들이 홍진성 지부장에게 단체 티셔츠 사업 자료 공개와 티셔츠 구입비 환수 조치를 요구했다. 이 소식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노조 집행부는 ‘함성소식’을 통해 “노동조합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행위이자 반 노동자적 행위”라고 비난했다.
조합원들은 이 사건에 대한 진정이 반려되자 재수사를 요구하며 국민신문고에 다시 진정을 넣었다.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논란이 커지자 결국 경찰도 수사에 나섰고 기아 노조 간부 A씨의 구속으로 이어졌다.
경찰은 A씨가 입찰에 참여한 두 업체와 사전 모의해 한 업체가 선정되도록 조작한 뒤, 입찰가와 원가 간 차액을 다른 조합원을 통해 전달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기아 노조 집행부의 조직적 범죄가 아닌 A씨의 개인적 일탈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A씨가 현 노조 집행부에 속한 간부라는 점과, 정확한 사실 규명도 없이 조합원들에게 정부의 노조탄압 핑계를 대며 사건을 덮으려 했다는 점에서 노조 집행부도 비난에서 자유로울 순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 노조 집행부는 올해 말로 임기가 종료되며, 내달 중 지부장을 비롯한 새 집행부를 선출하는 선거가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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