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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가 소아청소년과에서 발생한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해 국가가 전액 보상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필수의료 강화 정책의 일환으로 분만 중 사망사고가 아닌 소아청소년과에서 발생하는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해서도 현장 의사들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의지를 공식화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소아청소년과의사 단체에서는 “누굴 원숭이로 아느냐”며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임현택 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은 3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의사를 원숭이 취급하는 보건복지부 조삼모사의 연속’이란 제목의 게시글을 올렸다. 그는 “복지부가 의사들을 아주 대놓고 원숭이로 취급하고 있다”며 “의사들은 안심하고 환자들은 만족할 만한 대책이 전혀 아니다. 생색만 내면서 ‘자, 이제 필수의료를 전공해도 전혀 문제없는 방책을 보건복지부가 마련했다’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 같은 발언을 쏟아낸 데 대해 4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첫째,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한해 국가 보상한다는 부분이다. 그에 따르면 불가항력적 의료사고를 의사가 증명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는 “증명하기까지 엄청난 에너지를 써야 하고 그 과정에서 고통스럽기가 이를 데 없어 보상을 받으려다 의사들이 나가떨어지고 만다”고 말했다.
둘째, 보상 수준에 대한 부분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법원이 의료사고에 대해 선고한 배상금은 13억 원까지 치솟았다. 올해 5월 뇌성마비로 태어난 신생아에 대한 책임을 물어 분만의가 12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온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는 “의사가 신용불량자가 될 수밖에 없는 천문학적인 배상액을 선고하고 있는데 겨우 3000만 원을 제시하면 환자 측이 필수의료 종사 의사라는 이유로 민형사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느냐”고 쏘아 붙였다.
세 번째로 지목한 ‘형사부분 면책 요구’도 이와 유사한 맥락이다. 교통사고의 경우 10대 중과실이 아니면 형사면책이 되는데, 생명이 위중한 사람을 살리기위해 의료행위를 한 의사에 대한 형사 면책이 없는 점은 이치에 맞지 않으며, 실효성이 전혀 없다는 지적이다. 분만 관련 의료사고와 연관되는 산부인과 의사들 사이에서도 유사한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소아청소년과 외에 다른 진료과에 대해서도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내놨다. 그는 “병의원에서 이뤄지는 거의 모든 의료행위는 필수의료 행위다. 각종 암수술부터 화상 재건성형수술, 척추수술은 물론 고령으로 장벽이 얇아진 환자의 대장내시경검사 중 발생한 천공에 이르기까지 필수과가 아닌 과가 없다”며 “복지부는 생색 내기가 아닌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복지부가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보상제도를 소아청소년과로 확대하겠다고 밝힌 건 현재 국회 계류 중인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과 연관된다. 의사 출신인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했고, 복지부가 최근 “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답변서를 국회에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민주당이 현재 국회 다수석을 차지하고 있는 데다 국민의힘도 의대 정원 확대를 비롯한 필수의료 강화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국회 통과가 유력하다는 게 의료계 안팎의 중론이다.
2013년 4월 처음 도입된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보상제도는 현재 분만사고 등에만 적용된다.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의료보상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환자 측에 최대 3000만원을 보상하는 구조다. 현재는 전체 배상금의 70%를 국가가, 30%를 병의원이 내는데, 올해 5월 법안 통과로 다음달 14일부터 정부가 전액 부담하게 된다. 내년에는 보상액 한도도 늘어난다고 알려졌다. 정부는 제도 도입 10여 년만에 분만사고가 아닌 다른 분야로 적용 범위를 넓히면서 필수의료 기피현상 해소에 기여하길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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