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총은 오늘날 소총의 원조 격에 해당하는 무기다. 13세기 몽골에서 금속제 관형 화기인 ‘화총’이 만들어졌다. 10세기 후반부터 사용하던 화창은 12세기에 이르자 돌화창 등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기 시작한다. 초석 함량이 적어서 폭발력이 약했던 초기 화약과 달리 12세기 중반 초석의 비율을 70%까지 높인 개량 화약을 사용하게 되면서 화총이 등장했다.
몽골은 대나무 통(竹筒) 대신에 금속제 관형 화기를 만들었다. 1234년 몽골은 금나라를 멸망시킨 후, 금의 화약 무기를 가져갔고 장인들을 대거 몽골군에 편입시켰다. 돌화창은 금속 화기로 바뀌면서 이름도 ‘화총 (火銃)’이라 불렀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화총은 1290년경 제작된 흑룡강성에서 출토된 것이다. 화총은 임진왜란 때까지 각종 전투에 사용되다가, 조총과 화승총에 밀려 자취를 감췄다.
금나라와 송나라로부터 화약 제조법을 습득한 몽골제국은 화약 무기를 만들어 서방 원정에 활용했다. 13세기 중엽 칭기즈칸의 장손인 바투의 군대가 러시아로 원정해 폴란드를 침공했을 때 유럽에 화약이 전해졌다. 유럽에서 화약의 확산은 아랍을 통해서도 진행됐다. 아랍에 대한 화약과 화기의 전파는 1258년 몽골 서방 원정군에 의한 압바스조 이슬람 제국의 붕괴를 전후해 두 단계로 나누어진다. 첫 단계는 중국의 화약 제조법을 수용하여 화약을 자체 제조한 단계다. 둘째 단계는 중국의 화약과 화기가 직접 전입된 단계다. 몽골의 군사적 서행(西行)과 서아시아에 대한 공략은 화약과 화기가 아랍 세계에 직접 전파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 유럽 중세 봉건영주 성 무너뜨려
14세기에 접어들면서 화약 무기는 국가 간의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1326년에 유럽에서 이탈리아가 최초로 금속 관형 화기인 철포를 제조한 데 이어 영국도 프랑스와 백년전쟁 중인 1342년경에 화포(火砲)를 만들었다. 그 후 유럽에서는 화약을 사용하는 대포가 급속하게 발달하면서 중세 유럽의 중무장 기사와 두터운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채는 이제는 쓸모없게 됐다.
유럽에서 새롭게 등장한 화약 무기는 전쟁 양상을 변화시켰으며, 중세 봉건 제도를 몰락시키고 근대화를 앞당기는 촉매가 됐다. 1453년 오스만 튀르크에게 점령당한 비잔틴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 공성전이 대표적이다. 당시 콘스탄티노플은 비록 쇠퇴하긴 했지만, 난공불락으로 알려진 견고한 요새를 구축하고 있었다. 총 길이 21km에 달하는 3중 성벽은 웬만한 포격에도 끄떡하지 않을 정도로 중세 요새 가운데 가장 강력한 방어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았다. 역대 술탄들 역시 콘스탄티노플의 높고 견고한 성벽과 수비에 밀려 매번 물러나야 했다. 끊임없는 이민족의 침입에도 불구하고 비잔틴제국이 1000년 이상 지속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였다.
그러나 유럽 최전방의 보루라 일컫던 난공불락의 콘스탄티노플 대성벽은 엄청난 포격 앞에 무너졌다. 오스만튀르크의 술탄 메메드 2세(Mehmed II·1451∼1481)가 콘스탄티노플을 공략하기 위해 만든 우르반 대포는 역사상 가장 거대한 사석포다. 포탄의 무게만 600kg에 달하는 엄청난 크기를 자랑했다. 대포를 직접 만든 헝가리 출신 기술자 우르반(Urban)의 이름을 따 보통 우르반 대포라고 불린다. 정복왕 메메드 2세는 식탁의 은수저까지 팔아 우르반의 대포를 샀다.
10세기에 등장한 화전(火箭) 기술은 인도와 아라비아를 거쳐, 이탈리아까지 전해졌다. 최무선이 주화 등 각종 화약 무기를 만들던 시기인 1379년, 이탈리아 카이오자 성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제노아 군대는 ‘쏘아 올리는 불꽃’이라는 뜻의 ‘로케타(Rocchetta)’라 불리는 무기를 사용했다. 오늘날 로켓의 어원이다. 잔다르크가 참전해 유명한 1429년 오를레앙 공성전에서는 프랑스군이 동원한 대포가 영국의 롱 보우 (longbow:장궁)를 이겼다.
◇ 화약의 전파, 서양 역사를 바꾸다
화약 무기는 점차 다양하고 대형화됐다. 화약 무기는 20세기 들어 신기술과 결합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경지에 이르렀다. 1926년, 미국의 고더드는 액체 추진제를 연료로 사용한 로켓 발사에 성공했다. 현대에 접어들며 화약 무기의 역사를 바꾼 것은 독일이다.
폰 브라운 등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2년에 V-1과 V-2의 개발에 뛰어들었다. V-1은 일종의 순항미사일이다. 1943년부터 실전에 배치되어, 런던 시민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V-2는 대륙간 탄도미사일에 해당한다. 액체 엔진을 착용하고, 비행 물체의 운항을 제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었다. 종전 후 미국과 소련은 독일의 기술적 성과를 흡수해 우주 개발 및 군비 경쟁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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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곤 대표. 22세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유지곤폭죽연구소를 창업해 30대 시절 한국 대표 불꽃연출가로 활동했다. 독도 불꽃축제 추진 본부장을 맡아 활동 하면서 본인과 세 자녀의 본적을 독도로 옮긴 바 있으며, 한국인 최초로 미국 괌 불꽃축제, 하와이 불꽃축제 감독을 맡았다. 지금은 KAIST 미래전략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로봇 관련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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