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은 묻는다. 왜 남의 생각이 궁금한 것일까. 일종의 이것도 남의 생각을 ‘훔쳐보기’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생각을 훔쳐보는 것이 천박해 보이지는 않는다. 상대 입장에서 나와 다른 것을 알고 싶어 하는 심리일 뿐이다. 물론 이것이 좀 더 발전하면 천박한 훔쳐보기가 될 것이지만.
“골프장 어디가 좋아요?” “그리고 여행은 어느 나라가 좋아요?”
막연하다. 나의 생각을 훔쳐보려는 요량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어디든 다 좋다”고 말할 수 있다. 골프장을 물을 때는 반드시 디테일을 넣어서 답해준다. 그린 스피드 부분만 따졌을 때는 항상 스피드 3.0을 고수하는 송추가 좋고 친 자연을 품은 코스레이아웃은 레인보우가 좋다고 말한다.
그리고 골프장 가는 길이 가장 아름다운 곳은 강촌 엘리시안이 좋으며, 석양이 가장 아름다운 곳은 단연 아일랜드 골프장이 좋고, 따듯함과 고향스러움을 품은 곳은 서원밸리가 좋다고 말한다. 자연의 멋스러움은 파인비치 골프장을 따라올 수 없고 수국이 가장 아름다운 곳은 제주 사이프러스를 추천한다고 말한다. 코스 공략에 가장 정통인 곳은 우정힐스가 최고 이며 한국적 정서를 품은 코스는 티클라우드가 좋다고 말한다.
오히려 질문한 사람이 혼란스러워 한다. 그럼 변별력이 없는 것 아니냐는 생각인데 그 골프장만의 매력은 분명 있다. 한마디로 원시풍경의 DNA를 갖고 있는 골프장은 어디든 다 좋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오감 만족과 편안한 여행은 태국이 최고이며, 나의 행복감을 높여주는 나라는 라오스와 인도를 추천할 것이다. 역사와 예술을 보고자 하면 당연히 유럽을 갈 것이며 인간의 욕망과 위대함을 보려면 미국과 캐나다를 여행지로 추천할 것이다.
누구나 좋아하고 평가하는 가치는 다르고 변할 수 있다. 여행은 떠나면 고생이라지만 고생하지 않고는 행복이라는 것을 알 수 없다. 그 행복은 결코 편안함에서 올수가 없다. 그래서 우린 여행을 떠나는 것이고 편안했던 순간보다 고생했던 추억이 더 오래 남고 감동을 주기도 한다.
그래도 정말 삶이 힘들고 나를 위로 받고 싶다면 캄보디아 돈레샵 호수를 추천한다. 나무판자로 만든 거대한 수상 촌, 이곳에서 나고 자라 죽을 때까지 대부분 이 호수를 떠나지 않는다. 인간의 더 많은 욕망을 위해 떠날 법 한데 수백 년 간을 지키며 살고 있다. 순간 호텔은 무엇이고 따듯한 물과 푹신한 침대는 무엇이며 행복은 또 무엇인가를 되뇌게 된다.
그러고 보니 골프와 여행은 우리 인간에게 떠남을 통해서 소진했던 삶의 정신적, 육체적 자양분을 보충시켜준다. 다양한 삶의 빛깔과 질을 경험하면서 그제야 행복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유독 입이 거칠고 부정적이며, 폭력적인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도 부모라는 단어와 고향, 그리고 여행(떠남) 앞에서는 아주 순해지는 것을 본다. 숨길 수 없는 인간 내면에 흐르는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 모성애처럼 흘러서이다. 이는 원시시대부터 현재까지 혈관을 타고 피가 흐르듯이 인간에게는 호모루덴스(Homo ludens·노는 인간)가 있어서다.
그래서 골프와 여행은 철학적이고 교훈적이며 감동을 수반한다. 떠남 속에서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내 머리 속이 한 없이 순수해짐을 발견한다. 나와 다른 풍경, 나와 다른 생각, 나와 다른 삶을 훔쳐보며 순간 겸허해지는 나를 발견한다.
국내 600개가 넘는 골프장 오너에게 질문을 던져보라. 어디 골프장이 제일 좋으냐고 하면 십중팔구는 내 골프장이 제일 좋다고 말할 것이다. 어쩌면 우린 골프장의 등급을 먹이고 줄을 세워야 하는 상업적 평가라는 지독한 편견에서 살고 있는지 모른다. 솔직히 어느 골프장을 간들 싫은 곳이 있을까. 어느 여행지를 간들 나쁜 곳이 있을까.
원래 인간의 기본 욕구 중에는 ‘놀이’가 들어 있다. 재미와 감동, 그리고 동경을 추구하는 본성이 감춰져 있다. 어릴 적 교과서에 실렸던 김동인의 무지개를 기억할 것이다. 무지개가 끝나는 그 뒤엔 무엇이 있을까를 생각하며 여행을 떠난다. 우리가 떠나는 골프와 여행 역시 여기 말고 저곳엔 어떤 골프장이 또 어떤 사람이 살까를 생각하며 떠난다. 세상엔 나쁜 골프장은, 나쁜 여행지는 없다. 그 안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깨닫는지에 따라 달라지기에.
글, 이종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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