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강팀 이란
잉글랜드에게 6-2 패배
카타르 월드컵 어려워진 이유
그동안 월드컵 무대에서 항상 ‘언더독’ 평가를 받고 있었던 아시아 출전팀. 하지만 이번 카타르 월드컵은 사상 처음으로 중동에서 열리기 때문에 이란, 사우디, 카타르 등 중동팀들이 익숙한 환경에서 좋은 경기력을 펼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실제 월드컵이 개막하고 뚜껑을 열어보자 카타르, 이란 등 중동 국가들의 경기력은 형편없었다. 특히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팀이라는 평가를 받던 이란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는데, 대회 시작 전 이란은 잉글랜드, 미국, 웨일스와 같은 조에 포함되어 16강 가능성이 가장 높은 아시아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조직력 무너진
이란 수비
소위 ‘늪 축구’라 불리던 이란은 지난 21일 펼쳐진 잉글랜드와의 월드컵 조별리그 B조 1차전에서 6-2로 대패했다. 시작부터 이란에게 파상 공세를 펼치던 잉글랜드는 주전 골키퍼 알리제라 베이란반드가 동료 수비수인 마지드 호세이니와 충돌 후 뇌진탕 증세를 보이며 교체된 후 엄청난 골 세례를 퍼붓기 시작했다.
잉글랜드는 전반 35분 벨링엄의 헤딩골을 시작으로 사카, 스털링의 연속 골을 터뜨리며 전반에만 3골을 넣었다. 후반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사카, 래시포드, 잭 그릴리시가 각각 3골을 더 터뜨리며 6골을 넣었는데, 이란은 FC 포르투에서 활약하고 있는 타레미가 2골을 터뜨리며 분전했지만 결과적으로 4골 차이로 압도적인 패배를 당했다.
‘늪 축구’라 불릴 만큼 완벽한 수비를 자랑했던 이란은 이번 대회에서 수비 조직력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대해 축구 전문가들은 주전 골키퍼의 갑작스러운 부상이 원인이 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이란 축구협회의 무능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전했다.
갑작스러운
감독 교체
지난 7월, 이란 축구협회는 이란을 카타르 월드컵 본선까지 올려놓은 드라간 스코치치 감독을 경질했다. 2020년 2월 이란 대표팀 감독에 선임된 스코치치 감독은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까지 팀을 이끌었는데, 이란은 한국, UAE,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과 최종 예선 A조에 포함되어 최종 전적 8승 1무 1패를 기록하며 조 1위로 월드컵 본선에 올랐다.
월드컵을 4개월 앞둔 상태에서 대표팀 감독을 경질시킨 이란 축구협회에 대해 이란 매체는 선수들과의 불화설을 경질의 결정적인 이유로 추측했다. 사실상 월드컵을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전문가들의 평가 속에서 이란 축구협회가 선택한 감독은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이었다.
지난 9월 카타르 매체 도하 뉴스는 “2022 카타르 월드컵이 채 3개월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케이로스가 이란 국가대표팀을 맡기 위해 두 번째로 이란에 돌아온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스코치치의 감독 해임 때와 같이 케이로스의 감독 선임도 매끄럽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에 대해 이란 팀 매니저는 “이 문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해임 당일 정오까지 스코치치 감독과 함께 있었다”라며 “이런 결정은 전혀 프로답지 못하다. 일단 계약이 되었다면 다른 감독과 대화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감독을 바꾸려면 일단 기술위원회에서 논의가 있어야 한다. 스코치치 감독은 해임 당시 내 곁에 있었고, 이 과정은 전혀 공정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갑작스런 감독 교체에 대해 스코치치 감독은 어려웠던 이란팀을 수습해 월드컵 본선까지 올려놨음에도 푸대접을 받았다고 토로했는데, 그는 “대표팀을 위한 계획을 보고했지만 그 중 하나도 실행되지 않았다. 월드컵 본선까지 세부적인 로드맵이 있었음에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라며 “어떤 사람에게 책임이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이란 협회를 강하게 비판했다.
월드컵을 코앞에 두고 새로운 감독을 선임한 이란 축구협회에 대해 이란 매체는 협회 내부의 권력 투쟁이 이런 사태를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이란축구협회의 회장을 맡게 된 메흐디 타즈는 부임하자마자 스코치치 감독을 해임하고 자신의 직권으로 케이로스 감독을 데려왔다고.
과거 이란의 영광을 이끌었던 케이로스 감독이지만 부임 당시 상황은 좋지 않았다. 콜롬비아와 이집트 감독직에서 모두 경질된 상태였던 것. 특히 콜롬비아에서는 3경기 동안 11실점을 기록하며 부임한 지 1년 10개월 만에 감독직에서 내려와야 했다.
월드컵 개막 3개월 전에 이뤄진 감독 교체는 결국 이란 축구협회의 패착으로 남게 됐다.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의심받던 케이로스를 선임한 데다가 준비 기간 역시 짧아 이란의 특징인 ‘늪 축구’를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한 것이다.
이란 내부 상황도
불안정하다
한편, 이란 상황이 불안정한 것도 나쁜 경기력의 원인으로 꼽힌다. 현재 이란은 히잡 착용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의문사한 20대 여성 사건으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발생한 상황이다. 이에 이란 정부는 무력 진압을 하기 시작했고, 결국 유혈 사태가 발생했다.
잉글랜드와 경기가 끝난 후 케이로스 감독은 “국내의 정치적인 불안이 선수단에 큰 타격을 입혔다”라며 “선수들은 경기 준비에 집중할 수 없었다. 현재 선수들이 처한 상황은 최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란 축구대표팀 선수들 역시 이란 국민들의 반정부 시위에 지지를 보내고 있는 상황인데, 이란 대표팀은 지난 9월 펼쳐진 친선경기에서 모두 국가대표팀 배지를 가렸으며, 잉글랜드와의 경기에 국가가 연주될 때 침묵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란 국영매체에서는 월드컵 중계 중 선수들이 국가를 부르지 않고 침묵하자 월드컵 생중계를 중단하기도 했다.
이란과 잉글랜드의 경기를 본 누리꾼들은 “월드컵 두 달 전에 감독 바꾸는 것도 기가 막힌 건데 나라 상황까지 안 좋으니…” “이번에 이란 정말 잘할 것 같았는데 아쉽다” “이란이 이렇게 질 팀이 아닌데 이란 협회 때문에 이 모양 됐네” 등의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