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위 달린 페퍼저축은행
얇은 선수층에 고전
감독대행만 두 번째
여자프로배구 페퍼저축은행이 창단 1년 만에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난 2021-22시즌 7개 구단 중 최하위 7위를 기록한 것에 이어 올시즌 개막 10연패라는 불명예 기록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에 팀 창단 사령탑인 김형실 감독이 책임을 통감하고 전격 사퇴하겠다고 의사를 표했는데, 29일 페퍼저축은행 구단은 “심사숙고 끝 김 감독의 뜻을 수용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특히 여자프로배구가 개막하기 앞서 페퍼저축은행을 향한 여론 좋지 않았다. 전력 보강을 위해 학교폭력 가해 혐의로 물의를 일으킨 이재영을 영입하기 위해 접촉한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인데, 이로 인해 일부 팬들은 이재영 복귀 반대 트럭시위를 하기도 했다.
여기에 김 감독이 한 말이 논란을 키운 것. 그는 “구단이 이재영 선수와 만나서 오히려 감사하다. 구단으로써 이재영과 같은 에이스 영입을 검토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고 자신의 생각을 전한 바 있다.
젊은 선수들 경험 부족
제2의 김연경도 이탈
김 감독은 지난 2012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을 4강까지 이끌어 극찬을 받은 사령탑이다. 이에 페퍼저축은행 구단은 초대 사령탑으로 김 감독을 부임하며 기적이 이어지기를 바랬다. 하지만 기존 팀들과 달리 대부분의 선수가 신인으로 구성됐는데, 경험이 많은 사령탑과 달리 선수들은 경기에서 어김없이 경험 부족이 드러났다.
창단 첫 시즌에는 수차례 강팀을 상대로 좋은 분위기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3승 28패로 최하위에 머물러야 했다. 그럼에도 배구계에서는 페퍼저축은행이 보여준 특유의 끈질긴 승부욕과 투지에 박수를 보내기도 했는데, 올시즌에 접어들어 단 1승도 따내지 못하자 박수마저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신인드래프트에서 1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배구여제’ 김연경(흥국생명)을 대적할 몽골 출신 195cm의 국내 최장신 미들블로커인 염어르헝을 영입했다. 이에 페퍼저축은행은 올시즌 강팀으로 거듭날 것이라는 기대도 잠시 무릎 부상으로 팀을 이탈하게 된 것. 또 다른 미들브로커 하혜진과 아웃아시드 히터 지민경 역시 각각 어깨 인대 손상과 왼쪽 무릎 수술을 받으며, 부진에서 탈출할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계약기간 반도 못 채워
신생 구단의 현실
결국 팀의 성적 부진에 책임을 지고 사퇴를 하게 된 김 감독은 “이대로 가다간 20연패가 나올 것 같았다. 그렇게 될 경우 선수들에게 열등감이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1라운드가 끝난 시점부터 고민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팀에 변화를 줘야 할 때라고 생각해 사퇴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화려하지는 않아도 튼튼한 조직력을 갖춘 페퍼저축은행에서만 볼 수 있는 전통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선수들이 다치고 아프고 하는 것도 다 제 책임이다. 백업 선수가 부족한 것도 제 잘못이다. 이 모든 걸 안고 가겠다”고 사퇴를 결심한 순간에도 팀을 걱정했다.
현재 71세인 김 감독은 선수들과 세대 차이를 겪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는 “선수들과 나이 차이가 50년 이상이 넘다 보니 소통하는 데 쉽지만은 않았다. 내가 떠난다고 동요하지 말고 팀이 새로운 분위기를 가져갔으면 좋겠다”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 이에 김 감독은 3년의 계약기간의 반도 채우지 못하고 잠시 휴식 시간을 보낼 전망이다.
감독대행에 수석코치 아닌
이경수 코치가 맡는다
한편 여자프로배구가 한창인 가운데 김 감독의 사퇴로 페퍼저축은행은 차기 감독을 찾는 데 난항을 겪고 있다. 지금 당장 새로운 감독을 구할 수 없기에, 배구팬들은 당연히 수석코치인 이성희 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을 것이라 내다봤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김 감독은 이경수 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앉혔다.
이 감독대행은 김 감독과 함께 페퍼저축은행 창단 때부터 함께 해 온 코치로, 그 누구보다 팀의 상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감독대행이 감독대행을 맡은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닌 만큼, 경험을 살려 믿고 떠난 것으로 보인다.
페퍼저축은행에 코치로 부임하기 전 이 감독대행은 2020-21시즌 KB손해보험에서 당시 이상렬 감독을 대신해 감독대행으로 팀을 이끈 바 있다. 이에 이 감독대행은 “그때의 경험이 이번에 많은 도움이 되긴 할 거다. 아직 이성희 수석코치와 많은 이야기를 하지는 못했다”며 “당장 있을 경기를 위해 모든 걸 떠나 경기를 잘 준비하는 것이 목표다”고 말했다.
김 감독이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해준 이야기가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김 감독님께서는 그저 잘 부탁한다고 말씀하셨다”며 “우리 팀이 다른 팀처럼 조직력이 좋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책임감 있는 배구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앞으로 남은 경기에 다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