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이승환 기자] “재정 전쟁.” 한국재정학회장을 지내고 노무현·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위원회 등 진보·보수 정권을 아울러 정책 자문을 했던 전주성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가 쓴 책의 제목이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 심사에 돌입한 국회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키워드다.
전 교수는 책에서 국가 재정의 역할과 위상이 코로나19를 겪으며 180도 변했고, 통화정책이 중시되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재정을 얼마나 잘 다루는 지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국회에서는 정부가 돈을 최대한 아껴 써야 한다는 여당 입장과 정부의 씀씀이를 최대한 늘려야 한다는 제 1야당의 주장이 부딪히고 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일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하고 있다. [연합] |
국민의힘은 재정 건전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인구 구조 변화, 기후위기 대응 등과 같은 미래 위기를 대비하기 위해 정부가 곳간을 미리미리 채워둬야 한다는 것이다. 전 정부가 코로나19를 지나면서 너무 많은 돈을 쓰며 부채를 과도하게 늘렸다는 문제의식에 기반한다. 국가채무는 2017년 660조2000억원(GDP 대비 36.0%)에서 2022년 1067조4000억원(GDP 대비 49.4%)으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평균 경제성장률은 2.3%로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반면 민주당은 확장 재정이 필요한 시기라는 입장이다. 경기 침체로 민생 경제가 파탄에 이르는 상황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지출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이른바 ‘큰 정부’ 철학으로, 경기 부양을 위해 정부가 화폐를 계속 발행해야 한다는 현대통화이론(MMT)과도 문맥을 같이한다. 기본소득과 기본주택을 강조해온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경제관이 MMT에 기반한다는 평가가 많다.
여야는 각각 상반된 경제관을 토대로 서로의 주장에 비판을 가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주장처럼 재정을 확대할 경우 ‘물가 상승’이라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고 우려한다. 재정지출 확대로 유동성이 늘어나면 물가는 더욱 상승할 것이고, 물가 때문에 금리는 더욱 오를 것이라는 논리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고물가, 고금리로 인한 민생 어려움을 이야기하면서 재정 확대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모순”이라며 “확장재정을 펼치는 건 물가 상승을 더욱 부추길 뿐이고 고금리 고통을 더 오래 감내해야 하는 일을 발생시킨다”고 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일 국회에서 민생경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 |
민주당은 정부가 경제 위기 상황에서 손을 놓고 있다고 비판한다. 물가 상승을 우려해 재정지출을 줄이면서 민생고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물가와 성장이라는 난제를 함께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건전 재정’이라는 틀 안에 갇혀 경직적으로 재정을 운영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이재명 대표는 “돈 풀면 물가 오르니까 돈 풀 수 없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복잡한 경제 현상을 해결할 수 없다”며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이란 막강한 권한을 갖고 시장을 조정해 과열될 때는 억제시키고 침체될 때는 부양하는 것이 바로 정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여당이 구체적인 정책에 대해 생각나는 것이 없다면 우리가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제시할 것”이라며 “3% 성장 회복을 위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