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비 절감 정책 메인은 단말값 잡기
통신 요금제·단말값 분리고지 필요
윤석열 정부가 ‘가계통신비’ 절감을 위해 칼을 빼들었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 5세대 이동통신(5G) 중간요금제 출시에 이어 최근에는 ‘최저 요금제’ 등 요금제 인하 방안 검토를 주문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부가 통신 사업자에 고물가 책임을 씌울 뿐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를 내비치고 있다. 정부가 가계 통신비의 일부인 요금 인하 압박에만 적극적일 뿐, 가계 통신비 주요 요인인 휴대폰(단말기)에 대해서는 미온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통신 요금과 단말 가격을 분리 고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현행 가계통신비는 통신요금(통신서비스)과 단말기 가격(통신장비)로 통합 고지되는 방식이다. 통신 서비스는 이동전화, 유선전화, 초고속인터넷, 휴대폰 수리비 등 통신과 관련된 모든 비용을, 통신 장비는 휴대폰, 유선전화기, 팩스, 충전기 등의 가격을 포함한다.
통신 업계가 휴대폰 가격 분리 고지를 외치는 주요 이유는 ‘단말기 가격 인상 폭’이 있다. 지난 10년간 통신요금 인상폭보다 단말기 인상률이 더 높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를 따져보면, 가계통신비 중 통신 요금은 지난 2013년 14만3000원에서 지난해 9만9000원으로 30%가량 떨어진 반면, 휴대전화로 대표되는 통신 장비 지출금액은 9000원에서 2만9000원으로 322% 급증했다.
휴대폰 평균 구매 가격도 뛰었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 국내 휴대폰 단말기 평균 가격은 약 87만3000원으로 9년 전인 2014년(약64만원)보다 약 41% 급증했다. 통신장비가 고도화되고 원자재 가격이 오르는 등 가격 인상 요인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매우 높은 증가율이다. 해당 기간 동안 소비자 단말기 구매 비용은 매해 4%씩 늘어났다.
통신사의 요금제는 되려 물가 인상을 방어한 수준이라는 평가도 있다. 지난 2013년부터 2022년까지의 통계청 조사 결과, 지출목적별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상품·서비스·식료품·주류·음식·숙박은 지난 10년 동안 20~50% 가량 상승한 반면, 통신 물가지수만 유일하게 10년 전 대비 5% 떨어졌다. 소비항목 가격 증가폭으로 보면 일일 통신 이용료인 1422원은 커피값 5000원보다 왕복 버스비 3200원 등과 비교해도 낮은 수준으로 집계 됐다.
가계 통신비에 대한 불만이 5G 요금 보다 단말기 가격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김용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김영식 국민의힘 주최 토론회(우리나라 통신 요금 수준 바로 알기)에 참석해 우리나라 이용자들의 가계 통신비 불만이 단말기 가격에 의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단말기 구입비를 포함해 비교하면 현재 중간 수준의 비용 부담을 담보할 수는 없을 것 같다”며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통신서비스와 단말 비용을 분리 고지 하는 등의 단말기 관련 추가논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신비 항목에 가격대가 높은 단말기를 포함시키면 소비자들의 ‘통신비 불만’이 지속될 것이란 설명이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김용재 한국외대 경영학부 교수는 “우리나라 통신 요금 수준이 다른 나라와 비교해 과도하게 높다고 할 수는 어렵다”면서 “특히 초고속인터넷 유선상품과 결합 시 우리나라 요금 수준은 더 저렴한 편으로 해외보다 더 요금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라고 주장했다.
수익성 '꼴찌', R&D는 '우수'…애꿎은 통신사만 '탈탈'
계속되는 요금제 인하 압박은 국내 사업자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통신사들은 통신(유·무선 서비스)에서 벌어드린 일부 수익을 통신 인프라 구축이나 인공지능(AI)·클라우드 등 신사업 투자에 사용한다. 통신사 핵심 매출원 요금제를 낮출수록 통신사의 수익성이 떨어지고 통신 인프라 구축·신사업 투자는 소극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요금제 인하 압박에 시달린 국내 통신사들의 경우, 전세계 주요국 통신사들과 비교해 수익성도 좋지 않은 상황이다. 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GSMA)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우리나라 이동통신 3사의 평균 에비타(상각 전 영업이익) 마진율은 27.77%로 50개국 중 47위에 그쳤다.
이동통신 3사의 영업이익률도 저조하다. 국내 1위 통신 사업자인 SK텔레콤의 영업이익률은 지난 2011년 14.4%로 고점을 찍은 뒤 줄곧 내리막길을 걷다 2015년(10%)이후부턴 한 자릿 수로 떨어졌다. 지난해 통신3사의 영업이익률은 SK텔레콤이 9.3%, KT가 6.6%, LG유플러스는 7.8%이다. 이는 같은기간 미국 버라이즌(22.6%), 일본 통신사 KDDI(19.5%)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신 인프라 투자 규모는 계속 키워가고 있다. 통신3사가 2019년 5세대(5G) 이동통신 상용화 이후 4년 간 설비투자액(CAPEX)에 쏟은 금액은 30조원이 넘는다. 이는 R&D가 사업 경쟁력인 자동차 업계나 플랫폼 사업자보다도 많은 규모로, 통신3사가 인프라 투자에 소홀하지 않다는 지표로도 쓰인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최근들어 정부가 통신요금과 통신장비(단말)을 따로 떼놓고 봐야한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지난달 27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종합감사에서 박윤규 과기정통부 2차관은 “단말 종류에 따라서 차별 있는 부분은 없애고 그다음에 최저시장요금을 조금 더 내리는 방향으로 잡고 있다”면서도 “네트워크가 계속 진화하고 있고, 또 그에 따른 산업 발전적인 요소도 있는데 이런 부분을 종합적으로 검토를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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