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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오너 일가가 상속세 마련을 위해 2조6000억원대 계열사 주식을 처분하면서 10조원대로 추정되는 문화재와 예술품을 사회에 환원한 ‘KH(이건희 선대회장) 유산’이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
재계에선 삼성가(家)를 향해 ‘한국판 카네기’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미국에서 자수성가를 이룬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는 재산의 90%를 사회에 환원한 기부 문화의 선구자이다.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은 10조원 규모로 평가되는 미술품을 국가에 환원하면서 동시에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는 상속세 12조원을 납부하고 있다. 상속세를 마련하기 위해 삼성가는 보유 주식도 연이어 처분하고 있다.
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삼성 일가가 상속세 마련을 위해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주식 2조6000억원어치 가량을 매각하는 계약을 맺었다. 홍 전 관장, 이 사장, 이 이사장은 각각 삼성전자 지분 0.32%, 0.04%, 0.14% 규모 주식 매각을 위해 하나은행과 신탁계약을 맺었다. 매각 목적은 상속세 납부용이다. 신탁계약 기간은 지난달 31일부터 내년 4월 30일까지다.
삼성전자 이날 종가를 반영한 총매각금액은 2조909억원으로 집계됐다. 홍 전 관장이 1조3546억원, 이 사장이 1683억원, 이 이사장이 5680억원이다.
이 사장은 추가로 삼성물산 삼성SDS 삼성생명 지분 매각도 나선다. 이부진 사장은 지난달 31일 삼성물산(지분 0.65%), 삼성SDS(1.95%) 삼성생명(1.16%)을 매각하기 위한 신탁 계약을 맺었다. 약 4993억원어치 규 모다. 삼성가가 매각하는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SDS, 삼성생명 등의 주식 가치는 총 2조5902억원이다.
매각 시기는 신탁 계약을 맺은 기간 내에 블록딜(대량 매매) 방식의 매각이 전망된다. 앞서 지난 2021년부터 삼성가에서 지분을 매각할 때 신탁 계약 기간 내 블록딜 방식으로 처분됐다.
홍 전 장관은 지난해 3월에 이어 두번째로 삼성전자의 주식을 매각하면서 보유 지분 비율이 이 회장과 비슷하게 됐다. 지난해 3월 홍 전 관장은 삼성전자 지분 1994만1860주(0.33%)를 팔면서 기존 지분율 2.3%에서 1.96%로 줄어들었다. 추가로 이번에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하면서 보유 주식 수가 9797만8700주(1.64%)로 줄어들게 됐다. 이 회장은 아직 삼성전자의 주식을 한차례도 팔지 않았으며 현재 9741만4196주(1.64%) 보유하고 있다.
홍 전 관장은 이 선대회장 별세 후 가족 중 삼성전자 주식을 가장 많이 보유해왔다. 상속 개시 전부터 이 회장보다 지분율이 높았고, 법정 상속 비율(배우자 1.5: 자녀 1)에 따라 상속도 자녀들보다 약 2800만주 가까이 더 받았다.
이 사장과 이 이사장의 경우 이번 추가 매각으로 삼성전자 지분을 각각 5299만2821주(0.89%), 4729만190주(0.79%)를 보유하게 됐다.
지난해 3월 이 사장과 이 이사장은 삼성SDS 보유 주식(3.9%)의 절반인 150만9430주(1.95%)를 신탁 계약해 매각한 바 있다. 이 이사장의 경우 이보다 먼저 2021년 12월 삼성생명 주식 345만 9940주(1.73%)를 매각했고, 지난 4월 삼성SDS의 지분 전량 151만1584주(1.95%)를 처분했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삼성가가 주식담보대출·신용대출 등 여러 가지 방안을 동원했지만 12조 원에 이르는 상속세를 모두 부담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지분 매각의 방식을 취한 것으로 본다.
삼성 오너 일가는 2020년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 별세 이후 해마다 상속세를 분할 납부하고 있다. 계열사 지분, 부동산 및 현금 등 전체 상속분에 대한 상속세액은 12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유족들은 연부연납 제도를 활용해 2021년 4월부터 5년에 걸쳐 분할 납부하고 있다. 현재까지 6조원 이상을 납부했지만, 향후 3년간 추가로 납부해야 할 금액은 6조원 넘게 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12조원이라는 상속세는 세계 최고 수준의 규모다. 고 이건희 선대회장 유족들은 2021년 거액의 상속세가 부과될 것을 예상했음에도 고인의 문화재·미술품을 상속세 재원으로 활용하지 않고 오히려 사회에 환원했다. 유족들은 국보 ‘인왕제색도’를 비롯한 미술품 총 2만3000여점을 국가 기관에 기증하고, 감염병·소아암·희귀질환 극복 사업에 1조원을 기부했다. 문화유산 보존을 통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상생을 강조해온 이 선대회장의 뜻에 따른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일각에선 당시 기증된 미술품 가치가 10조원에 달한다고 알려지며 일각에서는 유족들이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 일부 작품을 매각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지만, 결국 국가에 기증했다”며 “당시 사회환원 유산 규모가 고인이 남긴 유산의 60%에 달한다고 추정됐다”고 전했다.
이번 신탁 계약에 앞서 삼성 오너 일가는 주식담보대출을 받았었다. 지난 6월 홍라희 전 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은 각각 삼성전자 주식을 담보로 1조4000억원, 5170억원, 1900억원의 대출을 받았다. 이 외에도 세 모녀의 주식담보대출 규모는 총 4조781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글로벌 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지면서 유족들의 대출 이자 부담도 가중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세 모녀가 받은 주식 담보 대출의 금리는 5%대로, 향후 부담해야 할 대출 이자만 연간 2000억원이 넘는다.
재계 관계자는 “유족들은 부족한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 경영권 약화 우려에도 불구하고 일부 계열사 주식까지 매각했다”며 “불필요한 오해를 원천 차단한 모범적인 준법 거래로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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