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재무장관을 역임한 로렌스 서머스(Lawrence Summers) 하버드대 교수가 6일 ‘옛 제자’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와의 화상대담을 통해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경제 현안과 중동 전쟁, 중국 경기 둔화 등 변수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특히 우리나라 중립금리 수준을 놓고는 두 사람 간 뚜렷한 시각차가 확인돼 눈길을 끌었다.
서머스 교수는 이날 한국은행·세계은행(WB) 서울포럼에서 한국의 중립금리 수정과 최적 모델에 대한 이 총재의 질의에 “한국도 글로벌 흐름을 따라갈 것”이라면서 “인구구조 변화와 노동력 증가 둔화는 중요하지만 한국이 만성적인 무역흑자 국가라면 중기적으로 중립금리가 올라갈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앞서 이 총재가 “저성장 압력 속에 한국 중립금리는 하향세에 접어들 것”이라고 언급한 데 대한 반론이다.
중립금리는 경제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나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압력 없이 잠재성장률 수준을 회복할 수 있는 이론적 금리 수준을 의미한다. 이 총재는 지난달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참석 당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세계적인 고금리 기조가 나타나고 있지만 한국은 전형적인 케이스가 아니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저출산·고령화 심화로 저성장에 접어들면서 원화가치와 중립금리가 떨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반면 저출산·고령화가 내수 수요를 줄여 무역흑자가 지속되면 중립금리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게 서머스 교수의 해석이다.
사제지간인 두 사람은 최근 미국 장기 국채 금리가 급등하는 현상에 대해서도 머리를 맞댔다. 이 총재는 우리나라 국고채 금리와 미국 국채 금리 간 동조화가 생각보다 강하다고 우려를 표명했고 서머스 교수는 “미국 장기 금리 상승은 글로벌 중립금리가 더 높다는 시장 인식이 반영된 것”이라며 “연방준비제도(Fed)가 장기 금리에 미치는 영향과 연준 움직임에 따른 시장 반응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서머스 교수는 연준이 기준금리를 한 차례 더 올릴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마지막인 12월에 금리 동결을 택하더라도 내년에는 추가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시각이다. 그는 “(미국 내) 물가 상승 압력이 여전하고 경제는 견조하다”면서 “연준이 12월 움직이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한 번의 추가 인상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동 정세 불안과 관련해서는 “극단적인 상황에 대한 중앙은행의 대비가 필요하다”며 “중동 확전 가능성,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한반도 갈등, 미·중 관계 등 불확실성이 매우 높다”고 진단했다. 이어 “주요 이슈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해 극단적인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에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이 총재는 이번 대담에 앞서 “서머스 교수는 저의 조언자이자 평생의 스승”이라며 “제가 경제학을 공부하는 동안 100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서머스 교수와의 5분간 대화로 더 많은 통찰력을 얻을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 총재는 과거 하버드대 경제학박사 과정 시절 서머스 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인연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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