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강도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수용됐다가 병원 치료 중 달아난 김길수(36)가 경찰에 검거된 가운데 압송 현장에 마스크를 착용하고 얼굴을 가렸다. 사흘간 도주한 김씨는 공개수배로 이미 신상이 대중에 공개된 상태였다. 현 제도상 이미 신상이 공개된 범죄자라도 얼굴을 가리면 이를 강제로 공개할 수는 없어 공개수배·신상공개 제도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7일 수사당국에 따르면 경찰은 전날 경기 의정부시 가능동의 한 공중전화 부스 인근에서 김씨를 검거했다. 김씨는 지난 4일 오전 6시20분께 경기 안양시 한림대성심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던 중 화장실에 가겠다며 보호장비를 잠시 푼 틈을 타 서울구치소 관계자를 따돌리고 도망쳤다. 그는 사흘간의 도주 끝에 지인에게 공중전화로 전화를 했다가 이를 역추적한 경찰에 붙잡혔다.
김씨는 같은 날 오후 11시52분 얼굴에 마스크를 한 상태로 안양동안경찰서로 압송됐다. 김씨는 도주 과정에서 공개수배돼 전 국민에게 구치소 입소 시 머그샷과 도주 중 CCTV 영상 등 얼굴이 공개됐다. 그러나 실제 압송 시에는 마스크가 하관을 가리면서 공개수배 전단 속 얼굴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채널A가 확보한 영상을 보면 경찰에 검거되기 직전 공중전화부스를 찾은 김씨는 검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으나, 경찰서로 압송될 때는 흰색 마스크로 바뀌었다.
현 제도상 수사기관 또는 사법기관은 아직 혐의가 입증되지 않은 피의자뿐만 아니라 범행이 확정된 범죄자의 얼굴을 호송 과정에서 강제로 공개할 수 없다. 호송 과정에서 얼굴을 공개해야 한다는 명확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령인 ‘수형자 등 호송 규정’은 호송 방법, 호송 시간, 호송 비용 등만 정해져 있다. 대신 경찰은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권고를 사실상 내부 지침으로 삼고 있다. 인권위는 2009년 구치소 수용자를 외부병원으로 호송할 때 수갑과 포승을 한 얼굴을 공개해선 안 된다고 권고했다. 인권위는 2018년에도 수용자의 외부 수용 시 수갑을 노출해선 안 된다고 권고했다.
범죄자의 정확한 신상공개를 원하는 여론은 커지고 있다. 2010년 신상공개를 규정한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시행에 따라 얼굴이 공개된 흉악범은 총 43명이다. 하지만 공개된 사진이 오래되거나 보정을 가해 실제 흉악범의 얼굴과는 다르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지난 6월 또래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정유정의 경우 실제 얼굴과는 괴리가 심한 보정을 한 사진이 공개됐다. 온라인에서는 정유정의 얼굴을 수정하는 등 실제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상황을 비꼬는 놀이가 성행하기도 했다.
호송 과정에서 피의자나 범죄자가 얼굴을 가린 대표적 사례가 고유정이다. 2019년 6월 제주경찰청은 신상공개심의위원회를 열고 전 남편을 살해한 고유정의 실명과 나이, 얼굴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고유정은 유치장이나 법원으로 이동할 때마다 긴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는 일명 ‘커튼 머리’로 사실상 신상공개를 무력화했다. 고유정의 행동에 “머리를 묶어야 한다” “호송 과정에서 마스크나 모자를 착용해선 안 된다” 등 조치를 취해달라는 요구도 나왔다. 이에 경찰은 법무부를 통해 피의자의 머그샷을 공개해도 된다는 유권해석을 받았으나, ‘강력범 본인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조건이 달려 사실상 반쪽짜리 머그샷 공개가 돼 버렸다. 실제 동의를 얻어 머그샷으로 신상이 공개된 사람은 2021년 서울 송파구 살해 사건의 이석준, 올해 8월 서울 신림동 공원 강간살인 사건의 최윤종 등 2명뿐이다.
신상공개 관련 제도는 계속 손질 중이다. 지난달 6일 국회는 본회의에서 ‘특정중대범죄 피의자 등 신상정보 공개법’, 일명 ‘머그샷 공개법’을 의결했다. 수사기관이 피의자 신상정보를 공개할 땐 결정일로부터 30일 이내 얼굴을 공개토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지금까지는 머그샷을 공개하려면 범죄자 본인의 동의를 받아야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아울러 신상공개 대상 범죄도 기존의 특정강력범죄와 성폭력 범죄와 함께 내란·외환, 범죄단체조직, 마약 불법 거래,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등으로 확대됐다.
범죄 억제 및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의 측면에서 신상공개 확대와 함께 호송 과정에서의 얼굴 공개에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김도우 경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범죄자의 신상도 수사자료의 일부분으로 이 역시 국민의 알 권리 보장에 포함되는 정보라 공개돼야 마땅하다”면서 “호송 과정에서 강제로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하게 하는 것은 피의자의 결정권을 침해할 수 있는 만큼 제도를 수정할 때 인권 침해나 사적제재로 이어지지 않게끔 하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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