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문맹’ 해결 사회적 요구 높지만
‘금융교육진흥법’ 교육위원회 계류
“초·중·고 학생 때부터 조기 교육
돈과 경제 올바른 가치관 심어줘야”
각종 지표상 우리 국민의 경제 이해력 수준이 여전히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조사에도 이른바 ‘금융 문맹’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조기 금융 교육 체계 구축’ 논의에는 좀처럼 속도가 붙지 못하는 모습이다.
최근 금융산업의 성장과 함께 금융자산 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동시에 청년들이 변종대출로 인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문제가 심화되고, 은퇴세대들이 투자에 실패해 노후자금을 잃고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문제 역시 발생하고 있다. 이에 돈과 자본에 대한 금융 교육이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7일 정치권에 따르면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초·중·고 학생들이 올바른 금융활동에 대한 역량을 갖춰 향후 경제활동 과정에서 합리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금융교육진흥법’ 제정안을 지난 3월 대표발의했다. 하지만 금융교육진흥법 제정안은 소관 상임위인 교육위원회의 문턱도 넘지 못하고 있다.
물론 2025년부터 고등학교 선택 과목으로 ‘금융과 경제생활’이라는 금융 과목을 들을 수 있게 됐다. 다만 선택과목인 점에 비춰 영어·수학 등 입시과목 위주 교육 환경에서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지 여부에는 회의적인 시각이 상당하다.
홍 의원이 대표발의한 금융교육진흥법 제정안은 초등학교 때부터 교과 과정에 금융을 편성하거나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
법안은 우선 ‘금융교육’을 ‘금융에 대한 지식을 이해하고 건전한 금융역량을 향상시키며 금융사고·금융사기 등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교육기관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교육’으로 정의했다. 이와 함께 교육부 장관에게 금융교육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금융교육종합계획을 수립할 의무를 부여하고, 교육감이 연도별 금융교육시행계획을 수립하도록 했다.
교육부 장관은 금융교육의 진흥을 위해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 및 금융교육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금융교육종합계획’을 3년마다 수립·시행해야 한다. 세부적으로 금융교육 관련 교육자료 및 프로그램 등의 개발·보급, 금융교육 전문인력 확보 및 연수 방안에 관한 사항, 금융교육 관련 전시·체험시설의 설치·운영 등을 종합계획에 포함하도록 했다.
특별시·광역시·특별자치시·도 및 특별자치도 교육감은 종합계획에 따라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연도별 ‘금융교육시행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한다.
이와 함께 법안은 금융교육을 지원하기 위해 연구기관 지정, 우수학교 지정, 교원연수, 금융교육센터 설치, 국제협력에 관한 사항도 규정했다.
홍성국 의원은 법안 발의에 앞선 학교 금융교육 활성화 방안 토론회에서도 “우리나라는 금융이 당장 입시에 영향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돈의 속성과 금융 지식을 배울 기회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수학은 잘하더라도 이자 계산은 못한다는 등의 문제점이 나아가서는 무리한 투자로 인한 경제적 손실, 노후 빈곤 등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21세기형 문맹으로도 지칭되는 ‘금융 문맹’이란 용어는 최근 청년층, 사회초년생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금융문맹을 정의할 때 자주 언급되는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말은 “문맹은 생활을 불편하게 하지만, ‘금융 문맹’은 생존을 불가능하게 만든다”이기도 하다.
이는 2030세대 사이에 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인 ‘영끌’, 코인과 주식에 빚을 내서 투자하는 ‘빚투’란 재테크 용어 사용이 급증하고 있는 사회 현상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청년 세대가 생활비 마련 등 급한 사정을 해결하기 위해 온라인 대부를 활용했다 막대한 피해를 보는 사례도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최근 청년과 사회 취약계층에 연 3000%에 달하는 폭리로 돈을 빌려준 뒤, 갚지 못할 경우 담보로 받아둔 나체 사진을 가족과 지인들에게 뿌린 혐의를 받는 불법 대부업체 일당이 경찰에 붙잡히는 사건도 발생했다.
우리나라에도 금융 문맹 해결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은 각종 지표로도 뒷받침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지난 2월 발표한 ‘2022년 초·중·고 학생 경제이해력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평균점수는 초등학생 65점, 중학생 58점, 고등학생 57점으로 지난 조사(2020년) 대비 각각 7.3, 8.4 , 5.0점 상승했다. 이러한 점수 상승은 코로나19로 인한 온라인 위주 수업에서 지난해 대면수업 전환에 따른 학습 피드백 강화 등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평균점수의 10% 내외 상승에도 불구하고 60점 내외에 머물러, 경제이해 제고를 위해 지속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또한 금융감독원과 한국은행이 지난 3월 발표한 ‘2022 전 국민 금융이해력 조사’ 결과에서는 2년 전(65.1점) 대비 금융이해력은 소폭 개선됐으나, 여전히 연령·소득·학력별 격차가 드러난 결과가 나왔다.
2022년도 우리나라 성인(18~79세)의 금융이해력 점수는 66.5점으로 조사됐다. 연령대별로는 30~50대가 평균(66.5점)보다 높고 20대 및 60~70대는 그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별 점수는 30대가 69.0점으로 가장 높았고 40대 68.9점, 50대 67.0점, 20대 65.8점, 60대 64.4점, 70대 61.1점의 순으로 뒤를 이었다.
소득계층별로는 연소득 7000만원 이상 고소득층(68.7점)이 가장 높은 가운데, 연소득 3000만원 미만 저소득층(63.2점)은 평균을 하회하는 모습이었으며, 학력별로는 학력이 높을수록 금융이해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대학을 포함한 대졸 이상(68.7점)과 고졸 미만(59.3점)의 격차는 9.4점으로 나타났다.
또한 우리 국민은 장기적인 재무계획과 관련한 활동이 취약하며, 금융상품 서비스 선택 시에는 전문적인 금융정보에 입각하지 않은 친구·가족·지인의 추천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법안과 관련해 홍성국 의원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정에서는 이미 자녀들에게 학교밖 금융교육을 하고 있어 금융교육 격차가 양극화를 더 심화시킬 것”이라며 “교과 과정에 금융교육을 신설하는 것도 중요하나, 그보다 국영수 등 기초영역에 자연스럽게 금융과 관련된 내용이 녹아들게 하여 아이들에게 돈과 경제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이 더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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