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돈봉투를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현역의원들에 대한 수사에 미온적인 자세를 보여 온 검찰이 최근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의 법정 증언에 힘입어 수수 의원 수사의 고삐를 당기는 분위기다.
이씨가 돈봉투를 살포한 책임을 놓고 공범들과 대립하는 등 서로 등을 돌렸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앞으로 있을 수사와 재판에서 이씨가 결정적인 단서를 추가로 제시할지 법조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부장검사 최재훈)는 지난 2일 민주당 임종성·허종식 의원의 국회 사무실과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하며 확보한 자료들을 분석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분석이 끝나는 대로 검찰은 두 의원을 불러 돈봉투를 받았는지 여부와 경위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현재 두 의원은 “돈봉투를 받은 적이 없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두 의원을 시작으로 검찰이 본격적으로 돈봉투 수수 의원들에 대해 강제수사에 나설지 주목된다. 두 의원과 그 주변을 면밀히 조사하다 보면 다른 수수 의원들의 실체도 곧 드러날 것이란 전망도 법조계에서 나온다.
검찰 수사가 급진전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씨의 역할이 컸다. 이씨는 지난달 23일 열린 ‘돈봉투 살포’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나가 돈봉투를 받았을 것으로 의심되는 의원들의 실명을 거론했다. 검사가 2021년 4월28일 녹취록 중 윤관석 의원이 이 전 부총장에게 “인천 둘하고 종성이는 안 주려고 했는데 ‘형님, 우리도 주세요’라고 해서 3개 빼앗겼어”라고 말한 부분과 관련해 “여기서 ‘인천 둘’은 이성만·허종식 의원, ‘종성이’는 임종성 의원이 맞느냐”고 묻자 이 전 부총장은 “네”라고 답했다. 이어 검사가 녹취록 속 윤 의원의 발언이 ‘1차 전달 현장에 없어 미처 돈봉투를 교부하지 못한 이용빈·김남국·윤재갑·김승남 의원에게도 주는 게 맞는다는 취지냐’고 묻자 이씨는 “네”라고 답했다. 다만 이씨는 이들에게 실제로 돈봉투가 전달됐는지까지는 알지 못한다고 증언했다.
검찰은 이씨의 녹취록과 법정 증언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우선 임종성·허종식 의원이 돈봉투를 받았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보고 관련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압수수색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대로라면 두 의원 다음으로 이용빈·김남국·윤재갑·김승남 의원에 대한 강제수사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이씨는 최근 돈봉투 살포 과정을 함께 모의하고 실행에 옮긴 이들이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데 배신감을 느껴 적극적으로 사건의 전말을 밝히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지난달 23일 재판에서 자신이 먼저 돈을 요구했다는 취지로 인터뷰한 이성만 무소속 의원에 대해 “한때 동지라고 여겼던 사이였는데 짠 듯이 저에게 인신공격성으로 덤터기를 씌웠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달 30일 재판에선 강래구 전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위원과 조직의 총괄이 누구였느냐를 두고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씨를 통해 수사가 빠르게 진전되면 검찰은 이달 내로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도 불러 조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송 전 대표는 돈봉투 살포의 최종 수혜자로 이 과정을 보고 받는 등 관여한 것으로 의심받는다. 검찰은 돈봉투 살포 당시 송 전 대표의 역할과 책임 유무 등을 면밀히 살핀 후에 수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이에 맞서 송 전 대표는 지난 3일 “검찰이 위법한 별건 수사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신청했다. 수사심의위는 국민의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쏠린 사건의 수사 과정을 심의하고 결과의 적법성을 평가하기 위해 대검찰청에 설치된 기구다. 수사의 계속 여부, 기소 또는 불기소 여부 등을 의결해 수사팀에 권고한다. 현재 수사심의위 위원장은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이다. 검찰은 곧 송 전 대표가 신청한 수사심의위 소집 여부와 일정 등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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