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에 간단하게 군갤에 글 쓴적 있는데 재업
어디선가 ‘2차대전 당시 전함은 무쓸모였고 항모가 다해먹었다’하는 이야기가 나오면 근거로 쓰이는 것중 하나가, 2차세계대전 전체를 통틀어 ‘정규항공모함’이 공습이 아닌 ‘함포’에 의해 격침당한 사례는 영국의 커레이저스급 항공모함 ‘글로리어스(HMS Glorious)’함이 독일 전함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에게 기습당해 격침당한 1건밖에 없다는 것임.
우선 본 글은 ‘아 야발 항모가 최고였다고 시대의 흐름은 항모였다고’ ‘그래서 항모가 2머전때 야간전 할 수 있었냐고 포격지원 전함보다 잘 할 수 있었냐고’ 여기 덤벼들려고 쓰는 글이 아니라 이 ‘글로리어스 격침 사건’에 대한 여러가지 많은 말, 말, 말들을 정리하기 위해 쓰는 글임.
글로리어스 격침에 대한 말이 많은 이유가, 영국 정부가 글로리어스 격침 이후 1940년 군사적 원인과 책임소재를 밝히기 위해 조사를 했는데, 갑자기 이 조사결과를 ‘101년 후인 2041년까지 열람금지’라고 기밀문서로 지정한 뒤 모든 언급을 회피했다는 것도 큼.
HMS 글로리어스 함은 노르웨이에서 철수하는 영국 공군 비행단을 실은 채 북해에서 다른 영국군 함선들과 함께 작전을 하던 중, ‘갑자기 어떤 이유로’ 함대에서 이탈, 구축함 두 척(아덴트HMS Ardent, 아카스타HMS Acasta)의 호위만을 대동한 채 이동하던 중
독일 전함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에 의해 선제 발견되고, 그대로 포격 세례를 받게 됨. 글로리어스는 날아든 전함탄에 함재기 한 대 띄워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적재하고 있던 항공연료 및 항공무장(항공어뢰, 폭탄 등)이 유폭하며 산화했고,
아덴트와 아카스타가 연막을 펼치고 어뢰를 발사하면서 두 전함에 맞서싸워봤지만, 겨우 구축함 두 척으로 동수의 전함에 맞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워쉽 작작해라 게이야” “그런건 레이테때 일본군 상대로나 가능하다 게이야” 소리를 들을 것임. 아카스타가 샤른호르스트에게 어뢰 한 발을 맞추는 데에 성공했지만 구축함들도 결국 이어서 날아온 전함탄 세례에 침몰함.
독일 전함들은 샤른호르스트가 타격을 입고 및 위치가 노출된 상황에서 다른 영국군 군함들이 더 몰려올 수 있다고 판단하고 영국군을 구조하지 않고 귀환했고, 결국 이 전투로 영국 해군 장교 및 수병, 공군 파일럿 및 정비병, 해병대원 합해 영국인/몰타인 1519명이 전사하고 41명만 구조되어 생존함. (독일군은 샤른호르스트 수병 50명 전사)
1. 독일 전함들을 아군 함선으로 오해해 함포의 사거리 안으로 접근을 허용했음.
2. 초계를 맡을 CAP(Combat Air Patrol)기를 한 기도 띄워놓지 않았고, 함재기엔 무장조차 탑재되지 않는 등 글로리어스의 실책이 많았음.
등도 까였지만
3. 왜 ‘정규항모’가 ‘겨우 구축함 두 척만을 대동’하고 독일 전함이 기어다니는 북해에서 본대와 떨어져 돌아다녔나?
가 특히 문제였음.
그런데 앞서 말했듯 이 격침에 대해 동년(1940년) 벌어진 조사에서, 영국 정부는 난데없이 조사결과에 대해 ‘101년 후까지 열람금지’ 시켜버림.
그리고 영국 정부가 발표한 3.에 대한 공식 입장은 글로리어스와 아덴트, 아카스타는 ‘모항 스캐퍼플로로 귀환하던 중’이었으며, 글로리어스의 연료가 떨어져 모항으로 재급유를 받으러 가야했다였음. 그런데 이후 생존자 증언 등으로 글로리어스엔 다른 함선들과 같이 작전할만한 충분한 양의 연료가 있었다라는 사실이 또 밝혀져버림.
이런 일들이 벌어지다보니 ‘글로리어스 격침 사건’에 대한 분석은, 음모론을 지양하는 사학계에서조차 온갖 가설과 썰들이 난무하고 영국 정부 발표가 맞냐 아니냐로 싸우는게 아니라 이 음모론이 맞냐 저 음모론이 맞냐로 싸우는 상황임.
그래서 왜 글로리어스는 본대에서 이탈했나? 어째서 영국 해군, 공군, 해병대에 복무하던 1519명이나 되는 영국인과 몰타인이 목숨을 잃었어야 했나? 에 대해선 크게 두 가지 썰이 돌아다니는데, 영국 정부 발표를 믿을지 썰을 믿을지 판단은 각자 알아서지만 일단 최대한 객관적으로 기술해봄.
첫 번째 가설. 글로리어스의 함장 가이 드오일리 휴즈(Guy D’Oyly-Hughes)의 개인적인 졸렬함이 참극의 원인이었다. – 현재 거의 정설
이건 꺼무위키나 국내의 여러 밀리터리 사이트들에서 ‘글로리어스 격침’하면 가장 많이 찾아볼 수 있는 내용이고, 외국에서도 영국 정부의 ‘연료 부족설’보다 더 흔히 돌아다니는 이야기임.
글로리어스는 엄연히 ‘정규항공모함’이었지만, 그 함장인 가이 드오일리 휴즈는 원래 잠수과에서 대부분 군생활을 보내다 항공모함 부함장 10개월만에 함장으로 승진한 케이스였음. 즉 배를 움직이는 함장이라 해도 어떻게든 항공과 출신을 굴리고 굴려서 함장으로 만드는 현대 미 해군과는 정반대로, 항공기에 대해선 1도 모르고 비행기 조종석 근처에도 가본적 없는 사람이 정규항모 함장으로 앉았단 뜻.
그렇다보니 직접 항공대를 지휘하는 비행단장들이나 편대장들과 마찰이 잦았는데, 특히 호전적인 성격을 가진 주제에 악천후같은 기상 조건이나 정비 사정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어서 비행기가 뜨기 힘든 상황에서도 왜 출격 안하냐고 무리하게 항공과를 닦달하는 일이 잦아 글로리어스 호의 편대장들은 머리가 돌아버릴 지경이었다고 함.
그러다 가이 휴즈는 소드피시 뇌격기(/폭격기) 편대를 지휘하는 항공대 지휘관에게 연료를 가득 채우고 항속거리의 절반, 그러니까 작전반경의 거의 끝자락에 해당하는 거리에 있는 지점으로 출격해 폭탄을 투하하고 오라는 명령을 내리게 됨. 항공대 지휘관은 머리가 얼얼했는데 이 임무는 소규모 타겟이 정해진 것도 아닌 그저 전략 폭격기로 때리는 것처럼 목표물도 불명확한 멍텅구리식 폭격이었기 때문.
이에 항공대 지휘관은 폭장량 700kg짜리 소드피시로 전략폭격해봤자 효과도 없고 함재기만 위험해진다고 휴즈와 대판 싸우는데, 이에 빡친 휴즈는 항공대 지휘관을 아예 명령불복종 혐의로 구속하고 스캐퍼플로 항의 군사법정으로 보내버림.
그 후 글로리어스가 출항해 작전하던 중 휴즈는 자기가 구속시킨 항공대 지휘관의 군사재판이 곧 열린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이에 ‘자기 말을 따르지 않은 장교가 파멸하는 꼴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다’는 졸렬함에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스캐퍼플로로 귀환하려 했으며,
그렇게 구축함 두 척의 호위만을 받으며 무리하게 스캐퍼플로로 향하던 이 무능한 함장은 ‘1. 초계기도 띄워놓지 않은 채로’ ‘2. 항공기엔 무장도 장착하지 않은 채로’ 항해하다 1500명이 넘는 부하를 대동한 채 용궁으로 갔다는 것.
그리고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영국 정부는 ‘함장이 개인적인 졸렬함으로 함대를 움직여 1519명이 죽었다’는 이야기가 퍼지면 해군에 대한 비난과 국가적 사기 손실로 이어질까봐 조사결과를 덮고, 101년 뒤까지 열람금지 시켜버렸다는 것임.
두 번째 가설이자 음모론. 처칠이 영국의 스웨덴 공격 계획인 폴 계획(Operation Paul)을 진행중이었고 글로리어스는 이를 수행하려다 격침되었다.
현대에 들어 글로리어스 함대 참극에 대해 아주 열성적으로 다루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당시 전사자중 한 사람이자 구축함 아덴트의 함장이었던 JF Barker 중위의 손자 Ben Barker라는 인물임. 당시 두 전함에 맞서다 격침당한 아덴트와 아카스타의 함장과 장교, 수병들은 상대하던 독일 해군측 기록에 인상깊으면서도 안쓰러웠다고 언급될 정도로 용맹하게 싸웠는데, 막상 JF Barker 중위를 포함한 구축함대의 인물들은 전후 별다른 훈장이나 포상을 받지 못했음.
이에 벤 바커는 자기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열성적으로 조사했고, 이라는 웹 사이트를 만든 뒤 글로리어스는 스캐퍼플로로 향하던게 아니라 스웨덴으로 향하고 있었으며, 처칠이 스웨덴의 도시 룰레오(Luleå)를 폭격하는 것을 시작으로 독일의 주 철광석 공급처이던 스웨덴을 공격한다는 폴 작전(Operation Paul)의 일환으로 글로리어스 및 그 호위함대를 출동시켰고 결국 글로리어스 함대는 이 작전을 수행하려다 산화했다는 음모론을 제시하기에 이름.
처칠의 스웨덴 공격계획인 폴 작전 자체는 전쟁내각 회의록에 실제로 등장하고, 즉 음모론의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처칠이 스웨덴 공격을 제시했던건 사실이었음.
이는 외교적으로 전쟁중에나 전후에나 상당히 민감한 사안이었는데, 1963년 7월 30일에 영국측이 보관하고 있던 Operation Paul라는 이름의 기밀문서 폴더의 16페이지중 10페이지가 ‘국가 안보를 이유로’ 삭제되는 일도 있었음.
벤 바커는 이를 바탕으로
1. 가이 휴즈와 처칠이 참극 얼마 전 개인적으로 만난 일이 있었다. (기록으로 확인되는 사실)
2. 처칠은 해군항공대를 동원해 룰레오를 폭격하려 했고 그 적임자로 소드피시와 전략 폭격기도 구분 못하던 휴즈를 생각했다.
3. 글로리어스호와 그 호위 구축함들은 스캐퍼플로 귀환이 아닌, 룰레오 폭격을 목표로 본대와 떨어져 항해하다 격침당했다.
라는 음모론을 제기하게 됨.
벤 바커의 주장은 그냥 음모론이라기엔 파장이 큰 편이고, ‘Operation Paul – the Fleet Air Arm attack on Luleå in 1940’라는 논문이 쓰여질 정도로 학계에서도 논의되는 사항임. 더 상세한 내용은 위에 링크로 올린 벤 바커의 웹사이트 뿐 아니라 다른 사이트에도 룰레오 공격 계획에 대해 다루는 글들이 많으니 영어가 된다면 찾아보면 좋음. (벤 바커가 제시한 근거들을 여기에 다 번역해 나열하면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다)
어느정도냐면 영국 언론에서도 이 음모론을 사실마냥 다루곤 하는데 (물론 영국 언론 특 – 선동용 2류 3류 난무함)
‘더 아티클’이란 처칠 지지 보수 언론에서 쓴 기사인데 벤 바커의 주장을 차용해 만약 처칠의 계획이 이루어졌다면 독일의 주 철광석 공급처인 스웨덴을 압박해 전쟁이 더 빨리 끝났을 거라고 역으로 처칠을 찬양하는 기사임.
이것들 말고도 더 자잘한 음모론들 따지면 많긴 한데 가장 흔히 퍼진 글로리어스 함대 참극에 대한 이야기는 이 두 개고, 사이트 뿐만 아니라 논문중에서도 다루는 논문이 많으니 앞서 말했듯 관심 있고 영어 실력 좋으면 벤 바커의 사이트에 들어가보거나 더 찾아보면 좋음.
물론 영국 정부의 발표를 믿을지, 함장 병신이라 침몰했다는 설을 믿을지 처칠이 처칠해서 침몰했다는 설을 믿을지는 각자의 판단이지만.
요약:
1. ‘함포에 의한 정규항모격침’은 영국 해군의 HMS 글로리어스 호의 사례가 유일한데, 이 사건에 대한 조사 보고서가 2041년까지 열람금지 되어 있음.
2. 그래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연료가 떨어져 귀환하다 격침당했다느니 함장이 졸렬해서 격침당했다느니 처칠이 처칠했을 뿐이라느니 말이 많음.
군사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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