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에 빈대까지 배송되는 건 일단 막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찝찝하고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잖아요.”
열 살짜리 딸을 둔 김유진(39)씨는 온라인쇼핑으로 식재료를 주문했다가 취소했다.
혹시나 빈대가 택배 상자를 통해 집안으로 들어올지 모른다는 염려가 들었기 때문이다. 그럴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해도 영 찜찜한 생각이 드는 걸 막을 수 없었다.
김씨는 “거의 이틀에 한 번꼴로 택배를 시키는데 딸이 아직 어려서 더 조심할 수밖에 없다”며 “빈대 얘기가 잠잠해질 때까지 당분간 택배 주문을 자제하고 직접 장을 보려 한다”라고 말했다.
서울과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빈대가 출몰하면서 택배를 통해 빈대가 확산하면 어쩌나 하는 소비자들의 우려도 고개를 들고 있다.
빈대의 잦은 출몰로 외출 과정에서 의류나 소지품에 빈대가 기어 들어갈 수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퍼지면서 택배를 집안에 들이는 문제 역시 꺼림칙하게 여기는 소비자들이 생긴 것이다.
특히 식료품을 비롯한 생필품 구매를 주로 온라인쇼핑에 의지하거나 택배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는 소비자들이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다.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김나경(24)씨는 “고향 집에서 보낸 겨울옷 두 상자를 방금 받았는데 여기에도 빈대가 붙어온 건 아닐지 불안하다”며 “자취생이라서 택배를 아예 이용하지 않기는 어려울 텐데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해외 직구를 즐겨 이용하는 소비자들도 불안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가격이 비교적 저렴하다는 이점이 있어 해외 직구를 하는데 괜히 빈대 피해를 입게 되는 것 아닌지 망설여진다는 것이다.
주로 중국산 전자제품 직구를 이용한다는 김모(26)씨는 “빈대가 해외에서 유입된 것이라고 하니 더 불안하다”고 했다.
일부 소비자들은 나름의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에 사는 이모(63)씨는 “혹시 몰라서 택배를 바로 받지 않고 2∼3일 정도는 바깥에 두었다가 받는다”며 “택배 포장도 바깥에서 뜯고 내용물만 집 안으로 가져간다”고 말했다.
종로구 한 편의점에서 일하는 직원도 “(빈대 출몰 소식 이후) 무인 택배 보관함 앞에서 상자를 개봉하고 쓰레기를 버리는 손님들이 늘었다”고 전했다.
소비자들의 불안감 속에 근거가 불분명한 루머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소셜미디어(SNS)와 맘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한 쇼핑몰 업체의 보냉 가방에서 빈대가 발견됐다는 게시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한 누리꾼은 SNS에 “한 마리만 출몰해도 집을 버려야 한다는 빈대가 택배와 함께 배달되고 있다”며 빈대가 출몰했다는 물류센터 리스트를 공유하기도 했다.
게시글에는 “무서워서 주문을 모두 취소했다”, “옆집에도 택배 상자가 몇 개씩 쌓여있는데 불안하다”, “어제 아기 옷을 택배 주문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 같은 댓글이 달렸다.
그러나 이런 게시물의 진위와 의도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SNS를 타고 급속히 퍼져버리면 해당 업체는 물론 관련 업체까지 감당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작지 않다.
이 업체 관계자는 “모든 물류 사업장에 전문 업체의 정기적 소독을 통해 철저히 관리하고 있고 현재까지 관련 해충이 발견된 사례는 없다”며 “최초 유포자와 유언비어를 퍼 나른 이들 모두 경찰에 수사를 의뢰해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여 과잉 대응하기보다는 기본적인 방역 수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엄훈식 한국방역협회 선임연구원은 “밤에 침대에 누워 자는 사람의 피를 빨아 먹이로 삼는 빈대의 특성상 택배 물류센터는 빈대가 번식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며 “확률적으로 희박한 택배를 통한 빈대 유입 가능성을 걱정하기보다는 차라리 바깥에서 옷을 한번 털고 들어오는 게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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