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1월이 돼서야 4분기 전기요금을 발표했다. 지난 9월 말 결정돼 지난달부터 적용했어야 할 요금이다. 여론 눈치를 보며 한국전력공사의 선(先) 자구책 마련만 요구하다가 40여일을 허비했다.
이 때문에 ‘전기위원회’를 독립화하는 등 요금 결정 체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연구 용역 발표도 미루며 미온적인 자세로 일관하는 중이다.
8일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가 출범 당시 국정과제로 내세운 ‘에너지 시장·요금 및 규제 거버넌스 독립성·전문성 강화’가 지지부진하다. 전기요금을 결정할 때마다 국제 에너지 가격을 반영한 원가주의 원칙 대신 정무적 판단이 주로 작용한다.
실제 이날 김동철 한전 사장은 자구책을 발표하며 “국정 운영의 어려움이 많음에도 선거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소폭이지만 요금 인상을 결단해 준 정부에 고마움을 표한다”고 밝혔다. 9일부터 산업용 요금만 kWh당 10.6원 올리는 정도에 그쳤는데도 감사를 전했다. 요금 인상 여부에 정치권 입김이 작용한다는 방증이다.
현재 전기요금을 심의·의결하는 기구는 전기위원회(전기위)다. 산업부 내 기구라 정부·여당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보기 어렵다. 요금 변동 요인이 발생해 인상을 요청하면 실질적으로 산업부가 승인하는 구조다. 이번 인상 폭도 전날 당정 간 논의로 결정됐다.
산업부는 지난해 10월 전기위 독립을 포함한 요금 체계 전반을 손본다는 취지로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현재 에너지경제연구원과 법무법인 태평양이 담당하고 있다. 애초 올해 6월 말 용역이 마무리될 예정이었지만 세부 내역을 들여다본다는 이유로 9월 말로 한 차례 연기된 뒤 감감무소식이다.
일각에서는 용역 결과 발표가 미뤄지는 배경으로 산업부의 미온적 태도를 지적한다. 전기위가 독립하면 산업부의 주도권 유지가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요금을 결정할 때 정치권 개입이 많아지긴 했지만 산업부 역할이 여전히 큰 건 사실”이라며 “전기위가 독립 기구로 분리되면 목소리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위기감이 감지된다”고 말했다.
한전도 독립적인 요금 의사결정 체계를 원한다. 분기마다 요금 인상 여부나 인상 폭을 놓고 골머리를 앓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김동철 사장은 지난달 4일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처럼 전기요금 인상 여부를 독립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전문가들 역시 전기위 독립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전기위를 물가당국인 기획재정부나 에너지당국인 산업부 산하에 두는 것보다 국무총리실 산하로 이관해 요금 결정 관련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기는 게 적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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