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가죽 시장, 벌써 이만큼 왔다고?
세계는 지금 비건 가죽 시장에 시선 집중!
동물보호와 비거니즘의 대두로, 천연가죽·인공가죽의 위상은 급변해 왔다. ⓒ게티이미지뱅크
지금은 많이 쓰이지 않지만, ‘레자’라는 단어라 통용되던 때가 있습니다. ‘가죽’을 뜻하는 영어 단어 ‘Leather’의 일본식 표현인데요. 실제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천연가죽’과 반대로, 폴리우레탄(PU)·폴리염화비닐(PVC)을 이용해 만든 인공가죽입니다.
인공가죽도 한때는 천연가죽의 대안으로 주목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동물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천연가죽에 가까운 퀄리티의 가죽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제작 과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성도 상당하고, 미세 플라스틱도 사용되기 때문에 문제가 됐습니다. 동물을 사냥하는 것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자연에 해롭다는 지적이 나왔죠.
그렇다면 간단하게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동물성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식물로 옷을 만들 수는 없을까?’ 패션 디자이너와 과학자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식물로 옷을 만들고, 생분해를 통해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면? 약간의 에너지로도 무한정 움직이는 ‘영구기관’의 패션 버전이 탄생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죠.
이처럼 제조 과정에서 동물을 이용하지 않고 합성 물질도 최대한 줄인 ‘식물성 인조가죽’, 다른 말로 ‘비건 가죽(비건 레더)’이 최근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다양한 패션 아이템은 물론이고, 201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연구의 성과가 최근 몇 년간 꾸준히 공개되고 있는데요. 어떤 다양한 식물들이 비건 레더로 재탄생하고 있을까요? 더농부가 한번 살펴봤습니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맥시마이즈 마켓 리서치는 지난 7월 전 세계 인조가죽을시장을 분석한 보고서를 공개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인조가죽 시장 규모는 2022년에만 약 500억 달러 수준입니다. 앞으로도 연평균 4.54%씩 증가해 2029년에는 약 680억 달러에 이를 전망입니다. 비건 가죽 시장에 먼저 진입한 이들은 뒤처지지 않기 위해 생산력 확장에 힘쓰고 있습니다. 후발주자들은 새로운 제품으로 시장에 인상을 남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바이오레더’는 자사 홈페이지에서 토마토 비건 가죽의 성취를 소개하고 있다. ⓒBioleather
우선 인도로 가보겠습니다. 지난 5월 9월 인도 뭄바이에 위치한 대체 가죽 제조 브랜드 ‘바이오레더(Bioleather)’가 새로운 상품을 선보였습니다. 바로 토마토 폐기물에서 추출한 셀룰로오스 섬유를 활용한 비건 가죽이죠.
수치를 자세히 살펴보면, 토마토 가죽은 일반 가죽을 만들 때보다 물은 98% 적게 사용하고, 탄소는 90% 적게 배출한다고 합니다. 물·마모에 강한 것도 장점인데요. 대체로 식물을 재료로 한 비건 가죽은 내구성이 떨어져 강도를 높이기 위해 인공 첨가물을 넣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바이오레더가 사용한 토마토 합성물은 그 자체로 내구성이 높다고 합니다. 다른 첨가물을 넣을 필요가 없는 것이죠.
아직 시제품은 없지만, A4 사이즈의 토마토 가죽 샘플을 구매할 수 있다. ⓒBioleather
이 토마토 가죽은 동물 권리를 위한 국제단체 ‘PETA(People for the Ethical Treatment of Animals)’ 인도지부가 주관하는 ‘2021 비건 패션 어워드’에서 ‘최고의 섬유 혁신상(Best Innovation in Textile)’을 받기도 했습니다.
지금 바이오레더가 판매하는 것은 토마토 가죽으로 만든 상품이 아닌 가죽 ‘샘플’인데요. 가격은 1천 루피로, 한화로 약 1만 5천 원입니다(11월 7일 기준.) 샘플을 받아든 디자이너들이 품질을 마음에 들어한다면 이 업체와 계약해 상품화까지 이어질 수 있겠죠?
2021년 에르메스는 버섯 균사체 가죽으로 제작한 빅토리아백을 선보였다. ⓒMycoWorks
미국으로 눈을 돌려보면, 토마토 같은 과일이 아닌 ‘균류’로 만든 가죽도 있습니다. 이번 주인공은 바로 버섯인데요. 비건 가죽을 다루는 미국 스타트업 ‘마이코웍스(MycoWorks)’는 버섯 균사체 ‘미셀리움(Mycelium)’를 활용한 ‘파인마이셀리움’을 개발했습니다. 만드는 방법은 다소 까다로운데요. 먼저 버섯으로부터 균사체를 채취해 건조합니다. 그런 다음 가소제(합성수지나 합성 고무 등에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첨가하는 물질)를 넣어 한 번 더 건조하죠.
자라나는 균사체는 실이 얽히면서 부풀어 오르는데, 이를 압축하면 가죽과 같은 질감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이러한 버섯 가죽의 가능성을 알아본 명품 가방 브랜드 ‘에르메스’는 마이코웍스와 협업해 2021년에 버섯 가죽으로 만든 가방 ‘빅토리아백’을 출시한 바 있습니다. 가격은 한화로 약 600만 원대. 억 소리 나는 액수지만 그만큼 에르메스가 비건 가죽의 발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죠.
마이코웍스가 만드는 버섯 가죽의 모습. ⓒMycoWorks
마이코웍스는 지난 9월 버섯 가죽 대량 생산이 가능한 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했습니다. 13만 6천 제곱피트(ft²) 면적을 가진 이 공장은 연간 수백만 제곱피트의 비건 가죽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요. 앞으로 공장이 활발하게 돌아가면 많은 양의 버섯 가죽이 싼 가격에 공급되고, 보다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군에 활용되는 모습을 볼 수도 있겠네요.
‘마이셀’은 국내 최초로 버섯 가죽 제조를 시작한 곳이다. ⓒ마이셀
이처럼 비건 가죽 시장에선 해외 업체들이 앞서나가고 있는 실정인데요. 비건 가죽의 밝은 미래를 알아본 국내 업체들도 하나둘 뛰어들고 있습니다. 에르메스와 협업하고 있는 마이코웍스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버섯 균사체로 가죽을 만드는 업체는 4곳뿐입니다. 그중 한 곳이 한국에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바로 국내 비건 가죽 제조업체 ‘마이셀’입니다.
향후 버섯 가죽을 내장재로 사용하겠다고 밝힌 현대자동차의 ‘아이오닉5’ 내부 구상도. ⓒ현대자동차
원래 마이셀은 현대자동차 그룹의 사내 스타트업으로 시작했고, 2020년 상반기에 현대자동차로부터 독립했습니다. 마이코웍스와 마찬가지로 버섯 균사체를 바탕으로 버섯 가죽·대체육 개발에 힘쓰고 있는데요. 대량 생산을 하기 전 시험 검증을 위한 공장을 짓는 중입니다. 이후 상용화 테스트를 통과하면 현대·기아에서 생산하는 자동차 좌석에 마이셀이 만든 버섯 가죽이 사용될 예정이라고 하네요. 국내 최초 ‘버섯 가죽 자동차’가 탄생하는 셈이죠.
김치연이 개발한 ‘김치 가공 부산물 파쇄·탈수 처리 시스템’ 전경. ⓒ세계김치연구소
아직 구체적인 제품이 나오지는 않았어도 비건 가죽으로 활용 가능한 기술을 갈고닦은 곳도 국내에 존재합니다. 바로 ‘세계김치연구소(김치연)’인데요. 김치연은 ‘김치의 세계화’를 위해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김치 제조업체에게 도움을 제공하는 연구기관입니다. 최근 김치연에서는 김치 가공 부산물을 비건 가죽·생분해 포장재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김치 가공 부산물’이란 김치를 만들 때 제품에 쓰이지 않고 버려지는 것들을 뜻하는데요. 배추 겉잎, 절임 상태가 불량한 배추 조각, 무 껍질 등이 여기 속합니다. 이런 부산물은 대부분 소각되거나 그대로 땅에 묻힙니다.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건 물론이고 처리 비용도 적지 않죠. 김치연 자체 조사에 따르면 김치 가공 부산물의 폐기물 처리 비용은 연간 약 100억 원 정도로 추정됩니다.
이 시스템을 이용해 부산물도 재활용하고, 처리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세계김치연구소
김치연이 개발한 건 ‘김치 가공 부산물 파쇄·탈수 처리 시스템’. 김치 부산물의 수분량을 낮춰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기술입니다. 이 기술이 꼭 필요한 업체에게 기술을 이전한 뒤 업체 측에서 ‘순환자원’ 인증을 획득했죠.
이미 김치연은 지난 10월 1일 김치 부산물·옥수수 전분을 이용한 포장재 연구 결과를 식품 분야 국제 학술지 ‘LWT-푸드 사이언스 앤드 테크놀로지(LWT-Food Science and Technology)’에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학술적 성과와 기술이 모두 갖춰졌으니 남은 것은? 기술이 상용화되어 더 많은 업체가 처리 비용 문제를 해결하게 되는 미래죠.
우리는 농업의 미래를 다양한 형태로 상상하고 있습니다. 농업은 기본적으로 먹거리 산업이기 때문에 미래도 자연스럽게 그럴 것으로 짐작하죠. 그러나 비건 가죽 트렌드에서 알 수 있듯 농업은 ‘먹는 것’ 이상으로 힘차게 뻗어 나가고 있습니다. 입는 영역에는 이미 자리를 잡았으니 다음 목적지는 어디일까요? 조금 엉뚱하긴 해도 언젠가 농산물로 만든 비행기·컴퓨터를 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더농부 인턴 유승재
제작 총괄 : 더농부 선임에디터 공태윤
nong-up@naver.com
더농부
참고=
조선비즈, <[그린비즈] 테슬라도, 에르메스도 선택했다...바로 ‘이 가죽’>
조선일보, <[쫌아는기자들] 마이셀, 버섯으로 세계 가죽 산업의 세대교체를 꿈꾸다>
세계김치연구소, <버려지는 폐기물, 이제 자원으로 탈바꿈한다 … 김치 가공 부산물의 미래가치 창출 기대>
어패럴뉴스, <비건 레더·에코 레더… 식물 가죽 패션 부상>
그리니움, <마이코웍스, 세계 최초 상업화 규모 버섯공장 가동! “풀죽은 ‘버섯가죽’ 업계 뒤집어놓아”>
비건뉴스, <무궁무진한 비건 레더 소재…인도 ‘바이오레더’, 토마토 가죽 개발>
뉴스트리, <[친환경기업] 버섯의 재발견...대체육에 가죽까지 만든다고?>
아시아경제, <[단독]현대차·기아, 내년 비건레더 신차 나온다…방글라데시 공장 신설도>
파이낸셜뉴스, <에르메스 ‘버섯 인조가죽’…韓 스타트업도 만든다>
서울경제TV, <“동물가죽 안써요”…들고 입는 비건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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