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한국전력이 9일부터 산업용 전기 요금을 ㎾h(킬로와트시)당 평균 10.6원 인상하기로 했다. 주택용과 소상공인용 전기 요금은 동결하고 대기업 공장 등에서 사용하는 산업용만 두 자릿수로 올린 것이다. 4분기 가스 요금도 동결됐다. 전기 요금 인상 적용 대상은 약 4만 2000호로 0.2% 수준이지만 전력 사용량은 전체의 48.9%를 차지한다. 한전은 또 본부 조직을 20% 축소하고 한전KDN 등 자회사 지분과 인재개발원 부지를 매각하는 등 자구책도 내놓았다.
전기 요금 반쪽 인상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 논리에 밀려 대기업들만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표를 의식해 많은 유권자들이 사용하는 주택용·일반용 전기료는 그대로 놓아두고 기업에 대해서만 요금을 올렸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원가 부담은 제품 가격 인상을 낳게 되므로 ‘조삼모사식 꼼수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어정쩡한 요금 인상으로는 2021년 이후 누적 적자 47조 원, 올 상반기 기준 부채 201조 원에 달하는 한전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어렵다. 당초 정부는 올해 전기 요금을 ㎾h당 51.6원 올려야 한전의 적자 해소가 가능하다고 전망했지만 1~4분기 인상 폭은 26원 남짓으로 절반 수준에 그쳤다. 수출 등으로 국가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기업에만 책임을 떠넘기면서 일반 가정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 에너지 절약 효과도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 비정상적 요금 체계를 방치함으로써 미래 세대에 비용을 떠넘기는 무책임한 일이다.
한전의 대규모 적자와 빚더미를 해소하려면 전기 요금을 현실화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주택용 전기 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35위로 저렴한 편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인 한국의 전력 소비량은 전 세계 7위이며 OECD 회원국 중 4위다. 땜질식 전기료 인상이 아닌 원가와 수요를 반영한 요금 정상화라는 근본 해법이 필요한 이유다. 정부는 선거 표심에 좌우되는 기형적인 요금 결정 구조에서 벗어나 가정용을 포함해 전반적인 요금의 단계적 현실화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에너지 과소비 구조를 탈피하고 효율성 제고도 가능할 것이다. 한전도 노조 반발 등에 막혀 지지부진한 고강도 자구책 실행에 속도를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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