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컵을 규제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임상준 환경부 차관)
정부가 식당·카페 등의 일회용품 사용 계도기간을 무기한 연장했다. 대표적 일회용품 중 하나인 종이컵의 경우 규제 품목에서 아예 빼 버렸다.
종이컵, 비닐봉지, 플라스틱 빨대 사용이 사실상 점주의 자율에 맡겨진 셈이다. 다회용 컵 세척을 위해 사람을 고용해야 하는 자영업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지만, 이를 바라보는 국민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임 차관은 ‘종이컵을 규제하는 유일한 나라’라고 했지만,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도입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일회용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는 추세가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은 2021년 7월부터 빨대 등 플라스틱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했고, 프랑스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회용 접시·수저 등의 사용을 금지했다.
뉴질랜드도 7월부터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금지했다. 이런 세계적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한국이 ‘종이컵 사용 금지’를 통해 그 흐름을 선도해선 안 될 이유가 뭔가.
종이컵은 재활용이 되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카페 등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종이컵은 내부 코팅 때문에 따로 모으지 않으면 재활용이 힘들다. 특히 한국은 ‘커피 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세계적으로 커피 소비가 많은 나라여서 최근 종이컵 소비가 증가하는 추세였다. 자영업자에게는 물론 부담이 되는 부분이 있지만, 유예 기간도 충분히 줬다. 오히려 유예 기간 동안 철저히 준비한 자영업자만 바보가 된 셈이다.
게다가 이런 조처가 총선을 앞둔 시점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포퓰리즘 의혹을 거두기 힘들게 만든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로 여당의 지지율이 크게 출렁인 가운데, 경기도 김포시의 서울 편입 추진·공매도 전면금지 등 포퓰리즘으로 해석될 수 있는 조처에 이어서 이번 결정이 나온 것도 이런 의심을 북돋운다.
일회용품 플라스틱 저감 정책은 단순히 자영업자 손익계산뿐 아니라 우리 후손의 미래, 나아가 지구 온난화와도 연결된 문제다. 혹시라도 총선에서의 유불리가 이런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면, 표를 얻기는커녕 표로 심판당할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이번 조치는 윤석열 정부가 밝혔던 탄소중립 원칙과도 어긋나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3월 발표한 탄소중립 계획에서 ‘일회용품 감량을 통해 생산, 소비과정에서의 폐기물을 감량하겠다’는 원칙을 밝힌 바 있다. 지난해에는 플라스틱 등 재활용을 통한 순환 경제 구조를 만들어 2025년까지 생활 플라스틱 발생량을 20% 감축한다는 국정과제도 제시했다. 2025년은 이제 2년 남짓 남았을 뿐이다.
정부는 자발적 참여를 유도한다고 밝혔지만, 과연 과태료 없이 인식 개선과 지원만으로 민간의 참여를 끌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자영업자들이 이번 조처를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를 자유롭게 써도 된다’는 시그널로 오해하게 될까 봐 우려된다. 자칫 일회용 컵 규제 전인 2019년 이전으로 소비자와 판매자들의 환경 관련 인식이 후퇴할 가능성도 있다. 자율규제에만 맡겨놓지 말고, 정부도 적극적 지원과 대대적 인식 전환 캠페인을 통해 ‘퇴행’을 막아야 한다.
이슈1팀 차장 이지은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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