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을 호를 딴 울산 ‘아산로’에 진입하자 ‘제조업’의 심장에 와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부두에는 해외로 떠나는 차들이 쉴 새 없이 선적되고 있었다. 이후 방문한 HD현대중공업 조선소 야드엔 배와 자재로 꽉 차 있어 넓은 부지가 좁아 보일 정도였다.
‘슈퍼 호황’을 맞은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조선소 바로 옆에는 K-산업의 핵심, HD현대일렉트릭 스마트 공장(500kV 규모)이 분주히 돌아가고 있었다. HD현대일렉트릭는 올해 수주 목표로 31억 달러를 내다보는 상황이다. 회사는 내년 매출 3조원 이상, 2030년에는 5조원을 달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4년치 일감이 쌓인 상태며 2033년 물량까지 요청하는 미국 고객사가 있을 정도다.
변압기 시장에 훈풍이 분 데는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육성하는 미국 IRA(인플레이션감축법), IIJA(인프라투자법) 등이 주효했다. 신재생에너지로 만들어진 전기는 변압 과정을 거쳐야 사용처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IRA로 반사이익을 누리게 된 곳은 HD현대일렉트릭이 대표적이다. 김영기 HD현대일렉트릭 부사장은 “경쟁국인 중국 제품은 미국 수출길이 막혔고, 미국용 초고압 변압기를 만들 수 있는 곳은 우리 회사 말고 별로 없다”고 설명했다.
공장 3층엔 ‘아이언맨 실험실’을 연상시키는 이중도어와 간실로 구성된 공장문이 있었다. 내부 역시 각종 로봇과 키오스크로 채워져 이곳이 ‘스마트 공장’임을 끄덕이게 했다.
변압기는 철심(자기회로)과 권선(전기회로)의 조립체인 ‘중신’이 핵심 부품이다. 변압기 내부에는 커다란 기둥 모양의 중신이 최소 2개 이상 들어가는데, 중신 높이는 4~5m에 이른다.
이때 로봇팔을 입은 ‘철심자동적층설비’가 눈에 들어왔다. 0.23~0.3㎜ 두께의 얇은 전기강판을 자르고 켜켜이 쌓아올려 원형 형태로 조립한다. 이러한 적층 공정은 24시간 내내 자동으로 진행된다. 이 덕분에 생산기간을 단축하고 인력까지 줄일 수 있었다. 기존에는 이 작업에 작업자가 최소 4명 있었다면 현재는 감시인력 1명만 있으면 된다.
중신에 필요한 철심은 포스코에서, 권선은 삼동에서 만들고 있다. 나머지 부품은 650여 개 협력사에서 가져온다.
최종 조립을 마친 변압기 크기는 압도적이었다. 무게만 250톤(t)이 넘고 폭 5.2m, 길이 12.0m, 높이 5.5m로 한참을 올려다봐야 했다.
이런 변압기는 고객사에 인도하기 전 최장 일주일간 시험기간을 거친단다. 고온·고압 실험뿐만 아니라 인공 낙뢰까지 맞아가며 혹독한 시간을 견뎌야 한다.
북미와 중동 등 밀려드는 주문에 회사는 새 공장 짓기에 나섰다. 유휴 공간을 활용해 철심 공장을 신축하기로 한 것이다. 투자액은 총 272억원이며 2024년 10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회사는 연간 매출 기준 1400억원 증대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김 부사장은 “미국의 반덤핑 이슈, 중동의 저유가 기조, 한국의 탈원전 이슈 등에도 800억원을 들여 스마트 공장을 지었다”며 “대관을 통해 IRA에 대해 미리 대응한 덕분에 에너지 대전환의 수혜를 누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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