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올라가려 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한국인 최초 빅리거이자 아시아 최다승(124승) 투수 박찬호(50)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특별고문이 한국인 최초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골드 글러브 수상자 김하성(28·샌디에이고)에게 건넨 조언이다.
김하성의 가슴에 깊이 박힌 말이기도 하다.
LG 트윈스와 kt wiz의 한국시리즈 2차전이 열린 8일 서울시 잠실구장에서 만난 박찬호 고문은 ‘김하성의 골드 글러브 수상’이 화두에 오르자, 얼굴을 활짝 폈다.
박 고문은 “이번 시즌이 끝나고 한국에서 김하성과 여러 차례 만났다. 그런데 김하성이 ‘지난해에 해준 말이 정말 감동적이었다’고 말하더라”고 운을 뗐다.
지난해 김하성은 ‘박찬호 장학금 전달식’에 참석했고, 행사 후 박찬호 고문과 꽤 긴 대화를 했다.
박 고문은 “그때 김하성에게 ‘자꾸 올라가려고만 하지 말라. 위가 아닌 앞을 보고,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그게 성숙한 선수가 되는 길’이라고 말했다”고 떠올렸다. ‘타율 등 수치에 얽매이지 말고, 장기적인 관점으로 기량을 향상시키라’는 의미였다.
2021년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김하성은 첫 해 117경기에 출전해 타율 0.202, 8홈런, 34타점, 6도루를 올렸다.
2022년에는 150경기 타율 0.251, 11홈런, 59타점, 12도루로 성적이 올랐지만, 김하성이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박찬호 고문은 “2022시즌을 마치고 김하성은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낀 것 같았다”며 “김하성이 자신감을 잃을 것 같아 걱정했다”고 회상했다.
올해 김하성은 152경기에 출전해 타율 0.260, 17홈런, 60타점, 38도루로 활약했다. 복수의 현지 언론이 “올해 샌디에이고의 유일한 수확”이라고 표현할 만큼 공수에서 맹활약했다.
양대 리그 포지션별 최고의 수비수가 받는 골드 글러브도 수상했다. 김하성은 유틸리티 야수 부문 수상자로 뽑혔다. 골드 글러브 수상은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이고, 아시아 선수 중에서는 스즈키 이치로(2001∼2010년 10년 연속 수상) 이후 두 번째다.
김하성은 올 시즌을 마친 뒤 박찬호 고문에게 “앞으로 나아가라는 조언이 나를 바꿔놓았다. 그 정도로 감동했다”고 감사 인사를 했다.
박 고문은 “김하성이 그렇게 말해줘서 내가 더 고마웠다”고 화답했다.
그는 “샌디에이고 구단도 김하성의 골드 글러브 수상을 매우 기뻐했고, 매우 의미 있는 일로 여겼다”고 덧붙였다.
박찬호 고문은 좌절을 딛고 주목받는 빅리거로 부상한 김하성을 보며 자신의 과거도 떠올렸다.
박 고문은 “1994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 입단했지만, 1995년까지 나는 마이너리그에 더 오래 머무는 선수였다. 당시 나는 무척 실망했는데 구단에서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절대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말라’고 격려했다”며 “김하성도 빅리그 첫해에는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샌디에이고 구단은 김하성의 근성을 믿었다.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하고 골드 글러브 수상자가 된 김하성의 타임라인을 떠올리면 여러 감정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제 박찬호 고문은 김하성에게 ‘겸손’을 강조한다.
그는 “최근 김하성에게 ‘이제 너는 더 겸손해져야 한다. 좋은 친구를 곁에 두고 배우라’고 말했다”며 “그런데 김하성은 이미 겸손한 선수다. 샌디에이고 구단도 김하성의 성품을 잘 알고 있다. 김하성을 영입한 이유 중 하나는 인성”이라고 했다.
박 고문은 ‘김하성의 인성’이 드러나는 사연도 전했다.
박찬호 고문은 “김하성이 팀을 떠난 밥 멜빈 샌디에이고 전 감독(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감독)에게 장문의 편지를 써서 감사 인사를 했다”며 “나도 빅리그로 올라갈 때 마이너리그 코치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김하성도 주위를 잘 살피고,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좋은 인성을 갖췄다”고 흐뭇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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