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재정 운용이 딜레마에 빠졌다. 연말까지 확정되는 불용액(쓰지 않은 돈)이 9조원 이상 나와야 국채 발행 대신 기금 여유분, 세계잉여금, 불용액(쓰지 않은 돈)으로 세수 부족분을 메울 수 있다. 반면 재정을 차질 없이 집행해 불용액을 최소화해야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조금이라도 더 끌어올릴 수 있다. 정부는 ‘정치한(정교하고 치밀한)’ 재정 집행으로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구상이다.
10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약 59조원에 달하는 세수 부족분에서 지방자치단체 몫(약 23조원)을 제외하면 중앙정부가 메워야 할 돈은 36조원 정도다. 정부는 추가 국채 발행 대신 외국환평형기금 등 기금 여유금(24조원)과 일반회계에 투입할 수 있는 세계잉여금(2조8000억원), 불용액(미정)으로 부족분을 메우겠다는 계획이다.
세계잉여금은 4조원이지만 국가재정법에 따라 지방교부세를 먼저 정산하고 잔액의 30% 이상을 공적자금상환기금에 보낸 뒤, 또 그 잔액의 30% 이상을 국가채무 상환에 써야 해 일반회계에 투입할 수 있는 자금은 2조8000억원이다. 기재부는 특별회계에서 발생한 세계잉여금은 각 특별회계의 세입으로만 쓸 수 있어, 세수 부족을 만회하기 위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재원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단순계산으로 연말에 확정되는 불용액은 최소한 9조원 이상이 돼야 한다. 다만 매년 불용액이 가변적인 만큼 올해 9조원 규모의 불용액이 발생할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불용액은 지난해 7조9000억원이었지만 2021년에는 3조7000억원 규모였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인위적으로 불용액을 만들어서 세수 부족분에 대응할 것이란 우려도 있었다.
정부로서는 인위적으로 불용액을 더 늘려 재정집행률을 끌어내리기도 마뜩잖은 상황이다. 불용액이 많아질수록 세수 부족을 메우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동시에 경제성장률에 대한 정부의 기여도는 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 지출의 GDP 성장 기여도는 올해 1분기 -0.3%포인트, 2분기 -0.5%포인트로 마이너스 수준에 머물렀다. 정부는 지속해서 ‘상저하고’를 강조해온 만큼 재정의 역할이 중요한 시점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는 ‘정치한 재정집행’을 하겠다는 다소 추상적인 재정집행방향을 밝혔다. 지난 9월 김완섭 기재부 2차관은 재정집행점검회의를 주재하면서 “민생경제활력 지원사업이 차질 없이 집행되도록 기금 여유재원 등 가용 재원 활용, 해당 사업에 대한 자금 우선배정 등 정치하게 설계된 재정 운용에 역점을 두고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정교하고 치밀하게 설계된 재정 운용을 하겠다는 것”이라면서 “연초에 선정한 중점관리사업을 중심으로 잘 관리해서 재정을 집행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기금 투입 규모 일부 조정 가능…재원 상황 모니터링중”
기재부는 불용액을 9조원가량 확보하지 않더라도 기금 투입 규모를 일부 조정하면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필요한 만큼의 불용액이 나오지 않을 경우 재정 대책을 소폭 조정하면 돼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기재부의 다른 관계자는 “기금에서 24조원을 마련한다고 했었는데, 기금 투입 규모를 늘리거나 하는 방식으로 조정해 마련할 수 있다”며 “재원의 진행 상황을 모니터링하면서 대책을 조정해 나갈 수 있다”고 전했다.
재추계 결과 도출됐던 세수 부족액이 59조원에 이르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세수 부족분 규모 자체가 축소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추계일 뿐이기 때문에 실제로 어느 정도가 나올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세종=이은주 기자 golde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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