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대립 심화에 복잡한 정치권 사건 헌재행 늘어
국감서 “재판 지연” 지적도…후임자 없이 퇴임
(서울=연합뉴스) 황윤기 기자 = 2018년 9월 취임한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이 5년 2개월의 임기를 마치고 10일 퇴임한다.
헌정사 최초 현직 법관 및 장관에 대한 탄핵, ‘검수완박법’을 비롯한 각종 권한쟁의심판, 낙태죄 폐지 등 사회적 논쟁에 대한 헌법적 해석을 줄지어 내놓았지만 정치의 영역에서 해결되지 않은 각종 갈등을 떠안느라 일반 헌법재판의 처리는 지연됐다는 아쉬움 섞인 평가도 나온다.
유 소장은 2018년 9월21일 7대 헌재 소장으로 취임했다. 문재인 정부가 막 2년 차에 들어선 시점이었다.
헌재는 2019년 4월 임신 초기의 낙태까지 전면 금지하면서 이를 위반했을 때 처벌하도록 한 형법 조항이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며 재판관 4(헌법불합치)대 3(단순위헌)대 2(합헌)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했다. 유 소장은 헌법불합치 의견을 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에 발맞춘 전향적 결정이라는 평가와 태아의 생명권을 무시한 것이라는 비판이 동시에 쏟아졌다.
2021년부터는 첨예한 정치적 사안이 하나둘씩 헌재로 넘어오기 시작했다. 2020년 4월 총선에서 과반이 넘는 의석수를 획득한 민주당이 입법 과제를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촉발된 갈등이 정치권에서 해결되지 못하고 헌재 문을 넘는 일이 잦아진 것이다.
민주당이 내건 검찰 개혁의 핵심 입법 과제인 공수처법과 ‘검수완박 법안'(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이 모두 헌재의 판단을 받았다.
헌재는 후보추천위원회 의결 요건을 완화해 야당의 거부권을 무력화한 공수처법에 대해 국민의힘 측에서 제기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를 2021년 4월 각하했다.
올해 3월에는 ‘검수완박’에 반발해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검사 6명이 국회의장을 상대로 낸 권한쟁의 심판청구도 각하했다. 유 소장을 비롯한 5명 재판관은 검사의 수사·소추권이 ‘헌법상 권한’이 아닌 ‘법률상 권한’이므로 입법에 따라 조정 가능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장관·법관·검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헌정사상 최초’라는 부제를 달고 헌재에 접수되기도 했다.
국회는 2021년 2월 임성근 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민주당은 “촛불혁명의 명령”이라며 이른바 ‘사법농단’을 단죄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탄핵을 주도했다.
8개월 뒤 헌재는 재판관 5(각하)대 3(인용) 의견으로 탄핵소추를 각하했다. 임 부장판사가 임기 만료 퇴직으로 이미 법관직을 상실해 파면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유 소장은 “재판 독립과 공정성에 심각한 위협”이므로 탄핵해야 한다고 본 소수의 편에 섰다.
10·29 이태원 참사에 대한 책임 공방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민주당의 탄핵소추로 이어졌다. 헌재는 올해 7월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이를 기각했다.
민주당이 주도한 안동완 차장검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올해 9월 22일 헌재에 접수돼 아직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여당과 야당이 국회에서 다툼을 해결하지 못하고 헌재로 직접 들고 오는 권한쟁의심판 사건도 유 소장 임기 들어 크게 늘었다.
2019년에는 검찰개혁법, 선거법 등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사법개혁특별위원회·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운영, 쟁점 법안의 패스트트랙 안건 지정과 관련해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이 권한쟁의심판을 연달아 청구했다가 무더기로 기각·각하됐다.
2020년에는 국회 상임위원회 배정과 관련해, 작년에는 ‘검수완박’ 법안과 관련해 권한쟁의심판이 제기됐다.
올해에는 이른바 ‘노란봉투법’과 ‘방송 3법’의 입법 과정을 문제 삼는 국민의힘 법제사법위원들의 권한쟁의심판이 청구됐고, 헌재는 지난달 26일 청구를 전부 기각했다.
복잡한 정치적 사건들에 대한 결정을 내리느라 일반 국민들이 권리침해를 구제해달라며 제기한 헌법소원 심판은 결론이 미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헌재가 사건을 접수해 처리하기까지 권리구제형 헌법소원은 평균 663일, 위헌심사형 헌법소원은 924일이 소요됐다. 위헌법률심판은 639일, 권한쟁의심판은 543일이 걸렸다.
박종문 헌재 사무처장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복잡한 정치적 사건이 헌재에 몰리는 것이 지연 원인 중 하나라는 김도읍 법제사법위원장의 지적에 “부정할 수 없다”고 답했다.
임기 내내 정치적 갈등의 해결사 역할을 떠안아야 했던 유 소장은 이날 후임자 없이 헌재를 떠나게 됐다. 이종석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재판관)에 대한 임명 동의 절차가 국회에서 지연된 탓이다.
water@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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