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작뉴스 이상수 기자] 운명은 결정된 것인가. 아니면 자유의지로 개척해 나갈 수 있는 것인가. DNA가 삶을 결정하는가. 꿈을 이루려는 집요함이 삶을 결정하는가.
미래 사회의 디스토피아를 그려내는 영화가 있었다. 앤드류 니콜 감독의 가타카(Gattaca). 제목이 영화 내용을 암시한다. ‘Gattaca’는 DNA 염기서열의 이니셜을 조합한 것이다. 아데닌(A), 티민(T), 구아닌(G), 사이토신(C). 이 영화는 인간을 유전자만으로 판단하는 미래 사회를 그리고 있다.
유전자조작으로 아이들이 태어난다. 그들은 우성인자만을 가지고 인공수정으로 태어난다.
빈센트 프리먼(에단 호크)은 예외였다. 그는 유전자조작 없이 자연분만으로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열등한 인간이었고 사회 하층민으로 살아갈 운명의 약골 중 약골이었다.
”신경계 질병 가능성 60%, 심장질환 가능성 99%, 예상수명 30.2년“
빈센트는 유전자조작으로 태어난 동생 안톤보다 키도 작고 고도 난시인 데다 모든 것이 부족했다. 나쁜 인자를 모두 제거한 우성인자의 동생과 빈센트는 자주 바닷가로 나가 수영시합을 한다. 당연히 번번이 지고 만다.
빈센트가 17살이 되던 어느 날, 형제들은 그날도 바다에 있었다.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다. 틈틈이 연습하고 연습했다 하더라도 기적이었다. 빈센트가 이겼다. 심지어 익사할 뻔한 우성인자의 동생을 구하기까지 한다. 빈센트에겐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던 순간이었다.“
그 사건은 빈센트에게 계시였다. 그는 가슴에 담아두고 있었던 꿈을 이루기 위해 그의 흔적을 모두 지우고 집을 나선다. 그의 꿈은 우주비행사다. 열성인자인 그로서는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청소부로 전국을 떠돌다 마침내 최고 우주 항공사인 ‘가타카’의 청소부로 취직한다.
꿈의 장소로 한 걸음 다가왔지만 아직은 그저 청소부일 뿐. 새로운 운명이 시작된 건 제롬 모로우 (주드 로)와의 만남이었다. 그는 우성인자를 가진 유명한 수영선수였지만 하반신 마비로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 그는 빈센트에게 그의 유전자를 빌려주기로 한다. 빈센트는 그의 DNA를 이용해 우성인자의 제롬이 된다.
운명은 두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을 교환하게 해주었다. 제롬은 빈센트에게 말한다.
”난 몸만 빌려줬지만 넌 내게 꿈을 빌려줬어.“
빈센트는 B급 인생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으로 향하는 우주선의 일등항법사다. 하지만 관객은 여전히 조마조마하다. 머리카락, 소변과 같은 제롬의 DNA 흔적으로 가타카를 출입하는 빈센트의 무사함이 곧 다가올 위기의 복선인 듯.
출발 1주일 전. 그 위기가 찾아온다. 감독관의 살해사건. 모든 직원의 신상 조사가 시작된다. 열성인자의 흔적을 철저히 감추어 왔던 빈센트는, 아니 제롬은 실수로 눈썹 하나를 흘리고 만다. 수사관으로 온 동생 안톤은 빈센트를 용의자로 확신한다.
빈센트를 향해 좁혀오는 수사망. 어느덧 연인이 되어버린 아이린(우마 서먼)과 제롬의 기지로 위기를 모면한다. 물론 빈센트가 범인은 아니었다. 진범은 가타카의 총책임자 조셉이었다. 감독관이 우주 미션을 취소하려 하자 제거한 것이다.
끝까지 우주 비행을 막아서는 동생 안톤과 빈센트는 다시 바닷가에 섰다. 그들의 마지막이 될 듯한 수영시합이 시작된다. 최대한 멀리 가서 돌아오는 자가 승리자다. 한없이 나가는 빈센트. 마치 그대로 바다를 건너려는 의도인가. 우성인자 안톤은 힘이 빠져 더 나가지도 돌아갈 수도 없다. 이번에도 빈센트는 동생을 구한다.
어떻게 나를 이길 수 있느냐는 동생의 물음에 빈센트는 말한다.
”난 되돌아갈 힘을 남겨두지 않아. 그래서 널 이기는 거야, 안톤!“
그랬다. 그래서 열성인자인 형이 우성인자의 동생을 이긴 것이다. 그리고 빈센트는 그의 꿈을 이루도록 도와준 많은 사람을 뒤로하고 우주로 향한다.
이 영화는 우생학이 지배하는 미래사회를 비판하는 것으로, 혹은 꿈을 위해 남이 정해놓은 한계치를 극복해 나가는 휴먼드라마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빈센트의 대사에는 또 다른 메시지가 숨어 있다.
나이가 50이 넘으면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작다. 지나온 자국을 살피느라 혹은 내년과 몇 년 후를 걱정하며 살기엔 허락된 시간이 작다. 그저 지금에 온 힘을 쏟는 것이다. 오늘에 온 힘을 쏟는 것이다. 누구든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른다. 내일 아침도 오늘처럼 올 거로 생각하지만 그건 모르는 일이다.
그저 지금과 오늘만 있을 뿐이다. 그렇게 오늘에 온 힘을 쏟아부어 충실히 살았다면 송장처럼 잠이 들 것이다. 담뱃재처럼 폭삭 그렇게 오늘 죽는 것이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다시 환생의 새날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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