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는 역시다. 누적 관람객 100만명을 기록한 스테디셀러 뮤지컬 ‘레베카’의 10주년 공연에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이번 시즌은 초연 멤버와 처음 합류한 배우들이 대거 새로운 조합을 선보였는데 각자 다채로운 매력을 만들고 있어 한층 유의미한 10주년을 완성해가는 중이다.
‘레베카’는 1938년 영국의 대표 작가 대프니 듀 모리에(Daphne Du Maurier)가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스릴러 거장인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이 1940년 선보인 동명의 영화로도 유명하다.
뮤지컬은 2006년 오스트리아 비엔나 레이문드 극장에서 초연된 이후 전 세계 12개국, 총 10개 언어로 번역돼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한국에서는 2013년 당시 강남구 역삼동에 있었던 LG아트센터에서 초연해 올해로 7번째 시즌을 맞았다.
극은 불의의 사고로 아내를 잃고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막심 드 윈터가 몬테카를로 여행 중 우연히 ‘나(I)’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시작된다. ‘나’가 막심 드 윈터의 저택인 맨덜리로 가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맨덜리 저택. 하지만 알 수 없는 음습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그 중심에는 집사 댄버스 부인이 있다. ‘나’는 살갑게 사람들에게 다가가지만 다들 누군가와 비교하며 수군대기 바쁘다. 비교 대상은 ‘레베카’다. 댄버스 부인은 레베카를 향한 집착을 눈덩이처럼 키워가며 대놓고 ‘나’를 짓누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인물과의 비교라니,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괴롭기만 하다.
‘레베카’는 국내에서 벌써 일곱 차례 무대에 오르고 있지만 변함없이 다수 회차가 ‘매진’을 기록, 꾸준한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뜯어보면 관객들이 좋아할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서스펜스 뮤지컬답게 공연은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는데, 숨 막히는 인물들의 심리전이 내내 긴장감을 준다. ‘레베카’ 초연 당시 관객들은 1막이 끝나면 “레베카가 언제 등장하냐”는 말을 많이 했다. 보이지 않는 존재라는 설정은 서스펜스 장르의 심리적 장치로 놀라운 효과를 낸다.
‘나’가 레베카의 죽음과 관련한 진실을 추적하면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는 점도 흥미를 높인다. 이 과정에서 ‘나’가 주체성을 갖고 성장하는 서사도 동반돼 관객들과 감정선을 나란히 하게 된다. 덕분에 ‘나’가 독창하는 마지막 에필로그의 여운이 길게 남는다.
킬링 장면·넘버는 ‘레베카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핵심 요소다. 댄버스 부인이 ‘나’와 발코니에 서서 광기 어린 모습으로 레베카를 부르짖는 2막 첫 장면이다. 이 신은 묵직하게 몰입감을 높이는 신영숙, 날카롭게 고음을 지르는 옥주현 각각의 강점이 살아나면서 초연 때부터 화제가 됐다. 회전하는 발코니, 바람과 함께 나부끼는 보랏빛 실크 커튼,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까지 한데 어우러져 ‘레베카’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가 이어지며 잠시 공연이 중단되는 구간이기도 하다.
지난 시즌에 이어 리사와 장은아도 댄버스 부인으로 열연을 펼치고 있다. 이들의 가창력에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아울러 댄버스 부인의 공포스러우면서도 묘한 분위기까지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막심과 ‘나’ 역은 신구의 조화가 환상적이다. 초연에서 활약했던 류정한·김보경이 맞춤옷을 입은 듯한 실력을 뽐낸다면, 테이·이지수 등 새로운 배우들은 신선한 매력으로 관객에 다가가고 있다. 그룹 레드벨벳 웬디의 첫 뮤지컬 도전도 성공적이었다.
어떤 조합으로 봐도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경험할 수 있는 ‘레베카’다. 덕분에 공연을 여러 차례 관람하는 ‘회전문 관객’도 많다. 여러 번 봐도 매번 다른 매력을 느껴볼 수 있을 테다.
공연은 오는 19일까지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계속된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