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로 20%가 넘는 체중 감소 효과를 확인한 비만 치료제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정식 승인을 받았다.
일라이 릴리는 지난 8일(현지시간) FDA와 영국 의약품규제당국(MHRA)으로부터 ‘젭바운드(Zepbound, 성분명 터제파타이드)’를 비만 치료제로 승인받았다고 밝혔다. 젭바운드는 체질량 지수(BMI) 27㎏/㎡ 이상의 비만·과체중이면서 고혈압, 2형 당뇨, 이상지질혈증, 심혈관 질환 등의 문제가 있는 성인에게 쓰인다.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과 인슐린 분비 자극 펩타이드(GIP)의 이중 작용제인 젭바운드는 앞선 임상에서 72주간 투약을 진행한 결과 실험군에서 위약군 대비 24.5%의 감량 효과가 확인됐다. 비록 임상 단계이지만 20%가 넘는 체중 감소 효과를 확인한 약은 젭바운드가 사상 최초였다.
GLP-1은 인슐린 분비를 촉진해 혈당을 강하하는 효과가 있어 당초 당뇨 치료제로 개발됐지만 부수적으로 뇌에서의 식욕 억제 효과, 위에서의 음식물 배출 속도 감소 효과가 확인되면서 비만 치료제로의 용도 전환이 이뤄지고 있는 성분이다. GIP는 GLP-1과 세포 종류가 다를 뿐 동일하게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는 효과를 낸다. 글루카곤은 췌장에서 분비돼 에너지 소비를 촉진함으로써 체중 감소 효과를 낸다.
비만 치료제가 큰 관심을 받는 건 비만이 인류의 적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비만연맹(WOF)은 적절한 대응이 없다면 2035년에는 세계 인구의 과반인 40억명이 과체중으로 분류되고, 비만 인구도 19억명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그만큼 비만 치료제 시장도 급성장해 투자업계에서는 시장 규모가 2030년 1000억달러(약 13조원)까지 커질 것으로도 전망하고 있다. 게다가 GLP-1 치료제가 2형 당뇨·비만에 이어 심혈관 질환 예방 효과가 확인됐고, 1형 당뇨, 알츠하이머성 치매, 비알코올성지방간염(NASH) 치료제 등으로의 확장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향후 비만 치료제 시장의 확장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덩달아 GLP-1 치료제 개발 기업의 몸값도 치솟고 있다. 릴리의 시가총액은 5613억달러(약 740조원)까지 불어나며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 중 시가총액 1위를 누리고 있고, 당뇨 치료제 ‘삭센다(세마글루티드)’를 비만 치료제 ‘위고비’로 바꿔 내놓은 노보 노디스크도 4463억달러(약 588조원)가 2위로 추격을 벌이고 있다. 노보 노디스크는 유럽 기업 중 시가총액 1위 기업에 오르며 덴마크 경제까지 좌지우지하는 기업으로 급성장한 상태다.
문제는 공급이다. 주요 당뇨·비만치료제 모두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는 수요를 공급이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젭바운드와 같은 성분인 마운자로와 삭센다·위고비 모두 공급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에 노보 노디스크는 투약 초기 환자들이 맞는 위고비 저용량 제형의 공급을 제한하면서 사실상 신규 환자 유입을 막고 있다. 기존 당뇨 위주의 GLP-1 치료제들도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한국 등 시장에는 공급이 더 지연되고 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릴리와 노보 노디스크는 내년 중으로 이들의 매출을 더욱 끌어올리겠다는 목표지만 이를 위해서는 공급 확대가 절실하다. 이에 릴리는 올해 말까지 터제파타이드 생산을 두 배로 늘리겠다는 목표에 따라 미국 생산시설의 증축을 진행하는 등 설비 투자를 대폭 확대하고 있고, 노보 노디스크 역시 위탁생산(CMO) 계약을 늘려가고 있다.
국내 업체들도 비만 치료제 전쟁에 뛰어들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전략기획실장(한미약품 사장)이 이끄는 ‘H.O.P(한미 비만 파이프라인)’ 프로젝트를 통해 2025년까지 GLP-1 기반의 한국인 맞춤형 비만약 출시를 목표로 내건 한미약품이 가장 앞서가고 있다. 지난달 ‘에페글레나타이드’의 비만 치료 임상 3상을 승인받은 한미약품은 2025년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비만 정도에 따라 초고도비만 환자에게 쓸 수 있는 약품부터 근육량 손실 방지, 요요현상 억제, 섭식장애 개선 등 다양한 비만 포트폴리오까지 갖춘다는 구상이다. 이외에도 대웅제약과 대원제약은 위고비의 성분인 세마글루티드를 기반으로 해 투약 편의성을 높인 패치형 비만치료제의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이춘희 기자 spring@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