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제조·판매사의 민사 배상책임을 인정한 첫 번째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피해자들의 배상 청구가 줄을 이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는 A씨가 옥시레킷벤키저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상고심에서 배상책임을 인정해 위자료로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피고 회사가 제조·판매한 가습기 살균제에 설계 및 표시상 결함이 있고, 원고는 그 결함으로 인해 폐가 손상되는 손해를 입었다”고 판단했다.
A씨는 2007년 11월부터 2011년 4월까지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 그는 2013년 5월 간질성 폐질환 등을 진단받았다. 질병관리청 전신인 질병관리본부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질환 가능성이 낮다며 2014년 3월 A씨에 대해 ‘가능성 낮음’(3단계) 판정을 내렸다. 3등급은 가습기 살균제 노출의 영향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으나 다른 원인을 고려할 때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질환 가능성이 작다는 의미다. A씨는 2015년 2월 피고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A씨 청구를 기각했으나, 2심 법원은 청구 일부를 인용해 피고 회사는 위자료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A씨의 진료소견서와 옥시 관계자들의 형사사건 유죄 판결 등을 토대로 “원고가 정상적인 용법으로 사용했는데도 신체에 손상을 입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도 2심 판결이 정당하다고 봤다. 대법원 관계자는 “원고가 ‘가능성 낮음’(3단계) 판정을 받은 조사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질환 가능성을 판정한 것일 뿐”이라며 “손해배상 소송에서 가습기 살균제와 그로 인한 질환의 인과관계 유무 판단은 사용자의 구체적인 증명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은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가 제조·판매업자를 상대로 낸 민사소송 가운데 나온 첫 번째 상고심 선고다. 형사사건은 가습기 살균제에 쓰인 성분에 따라 결과가 엇갈렸다. 대법원은 2018년 1월 옥시가 제조한 가습기 살균제와 피해자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해 신현우 전 옥시 대표에게 징역 6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옥시 제품과 성분이 다른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SK케미칼의 홍지호 전 대표, 애경산업의 안용찬 전 대표 등은 2021년 1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들에 대한 항소심 선고는 내년 1월 11일 나올 예정이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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