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를 내주고 살을 취했다.” “명분도 결기도 없는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의사진행 방해) 철회다.”
9일 국민의힘 지도부가 본회의에서 불법파업조장법(노동조합법 2·3조) 등 쟁점 법안들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철회하면서 당 안팎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당초 국민의힘은 노조법 개정안과 관련해 의원 20명이 필리버스터에 나설 예정이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간사로 첫 주자인 임이자 의원은 15시간에 걸친 연설을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4선의 권성동 의원도 자원해서 여섯 번째였던 본인의 발언 순서를 두 번째로 앞당겨 노조법 개정의 부당성을 알릴 예정이었다.
당내에서는 필리버스터 철회에 대한 불만이 쏟아졌다. 환노위의 여당 관계자는 “애초에 필리버스터라는 말이나 하지 말든지, 명분도 결기도 없다”고 비판했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의 여당 보좌관도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이 민생경제와 무슨 상관있느냐. 노조법은 경제에 즉각 영향을 미친다”며 “필리버스터 철회를 결정한 윤재옥 원내대표가 책임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말했다.
필리버스터가 현실화되면 주말 내내 국회 본회의장에 붙어 있어야 하는 데 대한 여야 의원들의 부담도 작용했다는 말이 나온다. 한 여당 초선 의원은 “총선을 앞두고 양당 의원들 모두 주말에는 지역구를 챙겨야 하다 보니 양쪽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며 “결국 여야 지도부가 짜고 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각 경제단체는 개정안이 통과되자 거세게 반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법안이 가져올 산업현장의 혼란과 경제적 파국을 막을 유일한 방법은 대통령의 거부권밖에 없다”며 “부디 기업들이 이 땅에서 정상적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거부권을 행사해주길 건의한다”고 덧붙였다.
한국경제인협회도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로 기업 경영의 어려움이 매우 가중되는 상황에서 노사 갈등과 파업을 조장해 기업의 경쟁력을 크게 후퇴시킬 수 있는 개정안에 대해 전면적인 재검토가 이뤄지길 요청한다”고 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국가경쟁력에서 가장 취약한 분야인 노동경쟁력이 더 후퇴할 가능성이 매우 커져 성장잠재력을 갉아먹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손경식 경총 회장 등 각 경제단체 회장·부회장은 오는 13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다.
이 같은 비판에도 국민의힘 지도부가 필리버스터를 철회한 것에는 방통위원장 공백에 따른 부담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한 여당 의원은 “노조법 개정안은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할 수 있지만, 탄핵안이 가결되면 꼼짝없이 직무가 정지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앞서 탄핵안이 가결됐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헌법재판소 판결을 거쳐 167일 만에 직무에 복귀했다.
장관 업무를 차관이 대신할 수 있는 행안부와 달리 방통위는 위원들의 합의로 안건을 처리하는 구조여서 이 위원장이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면 사실상 조직 기능이 마비된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노경목/설지연/김일규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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