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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화 가치가 무서운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달러당 엔화 환율은 최근 150엔을 돌파해 1990년 6월 152엔 이후 33년 5개월 만에 최고치다. 올해 1월 130.4엔에 비하면 엔화 가치가 16%나 떨어졌고 2021년 1월 104.2엔에 비하면 3년 사이 45%나 하락했다.
엔저 공습으로 인한 첫 번째 문제는 우리나라의 수출이 타격을 받는 것이다. 달러에 대한 엔화 가치가 내리면 일본 제품의 달러 표시 가격이 떨어지면서 국제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크게 살아난다. 일본 수출업자는 대부분 엔화로 판매 가격을 표시하는 전략을 쓰고 있으므로 엔화 환율이 오르는 즉시 자동적으로 달러 표시 가격은 하락한다. 이런 엔화 가치 하락의 충격을 가장 심하게 받는 나라는 수출 품목에서 상당히 겹치는 한국이다.
엔화 가치 하락이 우리나라 수출에 심각한 타격을 미친 사례는 여러 번 있다. 가장 가까이는 달러·엔 환율이 2012년 말 79엔에서 2015년 7월 124엔까지 3년 사이 57% 올랐던 소위 아베노믹스 때였다. 이 기간 중 우리나라 수출은 2013년 5600억 달러에서 2016년 4954억 달러로 3년 동안 12%나 감소했다. 전체 경제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 우리나라 수출이 엔화 약세로 타격을 받는다는 것은 경기 침체와 직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엔저 공습의 두 번째 문제는 대일본 수입 물량의 급증이다. 엔화 가치가 하락하면 일본 제품의 달러 표시 가격이 떨어지고 그로 인해 일본 물품들이 급격하게 한국으로 수입될 것이다. 맥주·담배·의류·과자류와 같은 일반 생활용품의 대일 수입이 급격히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아베노믹스가 발생한 2013년 달러 표시 대일 수입이 2.5% 늘었는데 일본 제품의 달러 표시 가격 하락 효과를 감안하면 일본 제품의 수입 물량은 20% 넘게 증가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수입 물량이 늘어나면 그만큼 국내 공급업자의 생산 물량이 줄어들기에 600만 국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생산과 고용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공습경보를 정책 당국자가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일본의 수출 통계를 ‘달러 표시’로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2012년 엔화 환율이 22% 상승했음에도 일본 수출은 달러로 표시할 때 2%밖에 오르지 않았으므로 대부분은 일본의 수출이 증가하지 않았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일본 제품의 수출 가격이 달러로 표시할 때 20% 이상 하락했으므로 일본 수출 물량은 22% 이상 증가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달러 표시 일본의 수출이 아니라 그것에 감춰진 수출 물량의 폭증인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엔저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보통 1년 이상의 시차가 있다는 점이다. 엔화 가치 폭락이 이미 3년 가까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책 당국의 이상 징후 포착 능력이 마비됐다는 사실은 엔화 가치 하락 이상으로 두려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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