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회의 중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겨 있다. 임세준 기자 |
[헤럴드경제=김진 기자] 여야가 국회법 해석을 놓고 또 다시 맞붙었다.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에 오른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 철회 여부를 놓고서다. 민주당이 탄핵안의 철회 및 재발의를 추진하자, 국민의힘은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은 일사부재의 원칙에 따라 재발의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국회법 해석을 둘러싼 여야 갈등은 21대 국회에서 유난히 반복되고 있다. 불과 2주 전 결론이 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및 ‘방송 3법’의 처리 절차를 둘러싼 여야 갈등의 연장선으로 여겨진다. 정치권에서는 “과거에는 국회법에 대한 입장 간극을 여야 협의로 메웠지만, 협치가 사라지며 꼼수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야는 10일 내내 이동관 위원장 탄핵안의 철회 가능 여부를 놓고 상반된 주장을 내놨다. 핵심은 본회의에 보고된 탄핵안을 국회법상 ‘의제’로 볼 것인지 여부다. 의제라면 철회 시 본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의제가 아니라면 철회한 뒤 재발의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야당의 잦은 탄핵안 발의를 비판해 온 국민의힘은 탄핵안이 의제에 해당한다며 일사부재의 원칙에 따라 재발의가 어렵다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은 의제가 아닌 만큼 이달 말 본회의에서 탄핵안을 재발의하겠다고 밝혔다.
변호사 출신인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안과 등 사무처에서는 일사부재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라며 “이번에 (탄핵안을) 철회했지만, 이달 30일과 12월 1일 연이어 잡힌 본회의를 시기로 해서 탄핵 추진을 흔들림 없이 이어나가겠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일사부재의라는 것은 하나의 안건을 한 번 심의·의결한 뒤 같은 회기에 또 심의·의결할 수 없다는 것”이라며 “가결이나, 부결로 결론 난 경우가 일사부재의 대상이 되는데 탄핵안은 특수성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철회라는 것은 아예 논의가 되기도 전에 철회가 된 것이기 때문에 일사부재의에 해당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반면 판사 출신인 장동혁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안은 본회의에 보고되는 순간 일정한 법률적 효력이 발생하고 그 자체로 의제가 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근거는 국회법 130조 2항이다. 이에 따르면 탄핵안은 본회의 보고로부터 24시간 이후 72시간 내 표결하지 않으면 자동 폐기된다. 장 원내대변인은 “폐기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의제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의제도 되지 않았는데 자동 폐기가 된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궤변인가”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은 김진표 국회의장이 탄핵안 철회를 결재하자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장 원내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본회의에서 탄핵소추안 철회권과 동의권이 침해됐음을 이유로 국회의장에게 권한쟁의심판을 최대한 빠르게 제기하고, 동시에 이번 정기국회 내 같은 내용의 탄핵소추안 내서는 안 된다는 가처분 신청까지 같이 내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가운데)이 10월2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위헌 제청 및 권한쟁의 심판 선고를 시작하고 있다. [연합] |
정치권은 이를 지난달 26일 헌법재판소가 결론을 내린 노란봉투법과 방송 3법 권한쟁의심판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다. 국민의힘 소속 법제사법위원들은 앞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과 국회의장,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과 국회의장을 상대로 2건의 권한쟁의심판을 제기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 주도로 법안들이 처리되면서 상임위와 본회의에서 자당 의원들의 심의권이 침해됐다고 지적했다.
당시 헌재는 2건 모두 기각 결정을 내리면서 사실상 민주당 손을 들어줬고, 법안들은 9일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야당 주도로 통과됐다. 국민의힘에서는 당시 헌재 판단을 놓고 “앞으로 60일만 지나면 5분의 3을 가진 민주당은 어떤 법이든, 위헌적인 법이든, 제대로 했던 법이든 아니든 본회의에 부의를 하게 될 것(전주혜 원내대변인)”이라고 비판했다. 헌재 판단이 다수당의 횡포에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이었다.
정치권에서는 여야 간 협치가 사라지면서 국회법 해석을 둘러싼 갈등이 어느 때보다 심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국회법이 촘촘하게 짜이지 않은 건 사실”이라면서도 “이전에는 여야가 재량껏 협치를 통해 공백을 메꿨는데, 이제는 그를 이용해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 국회 관계자는 “이러다 국회법상 ‘의제’의 명확한 정의를 담은 개정안이 나오는 게 아니냐”고 자조했다.
이동관 탄핵안이 ‘의제가 아니다’라는 취지의 유권해석을 내린 국회 의사국은 애꿎은 비판의 대상이 됐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민주당과) 국회 사무처가 짬짬이 돼서 불법부당하게 해석하고, 국회법의 근간이 되는 일사부재의 원칙을 훼손하려는 시도에 좌시하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진표 국회의장, 이광재 사무총장 모두 민주당 인사인 만큼 민주당에 유리한 해석을 내렸다는 의심이다.
한 국회 관계자는 “의사국의 유권해석에 법리상 문제가 없다”면서도 “철회 및 재발의가 가능해진다면 탄핵안 남발을 부추기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광재 사무총장은 이날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본회의에) 보고하면서 효력이 발생한다고 보는 의견이 있고, 한편으로는 의제라고 하는 것은 의사 일정으로 인쇄물로 표기되고 (이후 효력이 발생한다는 의견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반적으론 국회의장님과 양당 원내대표가 협의해서 처리했는데, 법의 불비인지는 정비가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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