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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다이어리] 불통의 신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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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플보단 악플이, 불통보단 싸움이 낫다고 했던가.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서로 벽을 치면, 작은 일도 오해와 비극으로 번지기 쉽다. 중국에서 생활하며 겪었던 일화를 소개한다.

어느 날 거주 중인 집 앞에 쓰레기 두 봉지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음식물도 섞여 불쾌한 냄새도 났기에 이웃이 빨리 처리해줬으면 싶었다. 게다가 방치된 위치도 어찌 된 일인지 이웃의 문 앞보다는 우리 집 문 쪽에 가까웠다.

이상한 느낌을 받기 시작한 것은 이 쓰레기 봉지가 사흘째 사라지지 않으면서다. 혹시 이웃의 것이 아닌가 싶어 부동산 중개인을 통해 관리실에 상황을 문의했다. 통상 거주공간과 관련한 문제가 생기면, 중개인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중국에서는 가장 빠르고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돌아온 대답은 무척이나 의외여서 어질어질할 정도. 중개인은 “옆집의 쓰레기가 맞다. 밖에 있는 당신들의 신발을 치우면 본인들도 쓰레기를 치우겠다고 한다”고 전해왔다.

사건의 전개를 이해하려면 중국인들의 생활 방식과 집 구조의 특성을 미리 알 필요가 있다. 입식 생활이 익숙한 중국인들은 대체로 집에서 신발을 신는다. 실내화로 갈아신기도, 밖에서 신는 신발을 그대로 신기도 한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공동주택에 한국과 같이 신발을 갈아신는 별도의 공간이 없어, 현관문을 열면 곧바로 거실이 펼쳐지는 구조가 많다. 기자가 거주하는 집이 바로 그러하고, 문밖에 신발장이 비치돼 있다. 그리고 세켤레 정도의 신발이 신발장 가장 상단에 올려져 있었다. 이 신발에 이웃의 기분이 크게 상한 것이다.

집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쓰레기 두 봉지는 일종의 ‘보복’이었다. 며칠 전 외출하려 보니 신발장 위의 신발이 모두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일도 있었는데, 이것이 누구의 소행이었는지도 짐작 가능했다. 중국에서 지인들과 왕래하며 집에도 방문해 본 적 있지만, 문 앞에 신발을 정리해두는 경우를 자주 봐 온 터였다. 중국인인 중개인에게도 이것이 문제가 되느냐 물었지만, 그렇지는 않다고 설명을 들었다.

이웃이 분노한 진짜 배경을 알게 된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근황을 나누던 베이징 출신 친구에게 이 일을 얘기하니 ‘내가 아는 다른 한국인도 똑같은 일을 겪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중국인 중에서도 베이징 사람들, 특히 나이가 많은 노년층 중 일부는 집 밖을 나서며 신발을 마주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단다. 신발(鞋)의 중국어 독음 ‘시에’가 사악하다(邪)는 뜻의 단어와 동음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집 문을 열었을 때 신발이 보이면, 외출해서 ‘나쁜 일을 만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 치를 떨었을 것이라고 했다. 일견 그간의 행동이 이해됐지만, 화해의 타이밍을 놓친 뒤였다.

이제 이웃과는 눈인사도 어색할 정도로 불편하다. 보다 적극적으로 상대의 의도를 이해해보려 하지 않은 나와, 중국의 ‘해음(諧音·다른 뜻의 단어가 같은 소리를 내, 금기나 미신이 생기는 중국의 언어문화 현상)’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을 관대하게 대하지 못한 이웃이 불통한 결과다. 다음 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중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크다는데, 이런 졸렬함보다는 넓은 이해와 장기적 안목으로 양국 정상이 좋은 성과를 내길 기대한다.

베이징=김현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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