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피해 건수 5년來 최다
시장금리 연동형도 고려해야
“불법 사금융을 끝까지 처단하고 이들의 불법 이익을 남김없이 박탈하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일 금융감독원을 방문해 불법 사금융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한 말이다. 대통령의 경고장은 그 만큼 해당 피해의 심각성이 크다는 의미일 것이다.
실제 올해 상반기 금감원 불법 사금융 피해 신고 센터에 접수된 건수는 6784건이다. 상반기 기준으로 최근 5년 래 가장 많은 규모다. 불법 대부 유사 수신 신고 상담 건은 올해 3분기까지 1만62건으로, 전년 동기 보다 23.6% 급증했다.
정부와 금융당국 등 관계부처들이 불법 사금융 피해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약발이 먹히지 않는 모양새다. 오히려 은행권만 더 초조해하는 분위기다. 대통령이 금감원에 방문한 것은 결국 금융권 전체로 상생금융 지원 확대를 압박하기 위한 명분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항간에는 이 마저도 은행권의 책임론으로 번져질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총선을 앞두고 있는 점도 이들의 불안과 불만에 불을 지핀다.
많은 전문가들은 불법 사금융 피해의 시작점을 법정최고금리로 지목한다. 법정최고금리란 대출상품에 대해 법이 허용하는 가장 높은 금리를 의미한다. 이는 금융기관의 시장지배력 남용을 방지하고 대출시장에서 저소득층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됐다. 따라서 초과하는 이자 계약은 무효이며, 초과 부분에 대해서는 재판상 이를 청구할 수 없다. 이를 ‘선의의 정책’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법정최고금리는 총 7차례의 시행령 개정을 거치며 최초 66%에서 현재의 20%까지 인하됐다. 그러나 이 선의의 정책이 저신용자들을 오히려 불법 사금융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역설을 낳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법정최고금리를 현행 20%에서 18%로 2%포인트(P) 인하하면 2021년 말 기준 카드·캐피탈·저축은행의 신용대출을 받고있는 차주 중 약 77만4000명의 금리가 인하된다. 반면, 약 65만9000명의 차주들은 더이상 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지 못하고 대부업이나 비제도권 금융으로 밀려나게 된다.
이는 금리 산정 체계 문제를 간과했기 때문이다. 금융사들은 차주가 대출을 갚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대손비용을 대출금리에 반영한다. 저신용자일수록 대출 상환 능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해 대손비용이 높게 책정된다.
지난해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지며 조달금리가 치솟는 와중 법정최고금리는 20%에 묶이면서 금융사들은 손실 위험이 높고 수익성이 떨어지는 저신용자에게 대출을 내줄 여력이 사라졌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법정최고금리에 근접한 수준으로 대출을 공급해줄 차주, 즉 저신용자에게 더 이상 금리를 인상할 수 없어 수익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급전이 필요한 저신용자들의 발길은 시중은행과 2금융, 대부업체로 이어지지만 이들이 받게 되는 것은 생계비 대신 ‘대출 거절’ 뿐이다. 남아있는 선택지가 불법 사금융이 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인 것이다.
선의의 정책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선 지금이라도 시장금리 연동형 법정최고금리 제도를 고려해야 한다. 전문가들도 이 제도는 조달금리 상승에 따른 취약차주 배제 현상을 대폭 완화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조달금리의 상승폭만큼 법정최고금리가 인상되기 때문에 취약차주 대부분에게 대출 공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서민 살림살이가 타격을 받고 온전히 회복되지 않고 있다. 신용평점이 높았던 이들이 한 단계 내려가고, 또 내려가는 일도 허다하다. 치솟는 물가에 당장 다음 달 생계비를 걱정해야 하는 서민들의 한 숨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가 불법 사금융 근절에 노력하기로한 만큼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보다 세심하고 유연한 정책 재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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