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 창업주에게 1주당 최대 10주의 복수의결권을 허용하는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오는 17일 시행된다. 제도가 시작되면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 대규모 투자를 꺼리던 벤처기업 400여곳이 혜택을 받을 전망이다. 다만 기존 주주들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만큼 혜택을 받으려면 까다로운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13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중소벤처기업부는 이날 서울시 서초구 엘타워에서 복수의결권제도 사전간담회를 진행한다. 복수의결권 제도의 본격적인 시행을 앞두고 제도를 희망하는 기업 8개사가 참석한다. 중기부는 기업들의 의문사항을 청취하고 관련 매뉴얼을 배포할 계획이다.
복수의결권이란 창업자 등 특정 주주에게 보유주식보다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로, 국내 상법의 첫 예외규정이다. 현재 상법은 투자한 자본에 비례해 지분을 가지는 ‘주주평등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따라서 하나의 주식에 하나의 의결권만 인정돼왔다.
복수의결권을 도입하는 배경에는 적대적 M&A가 있다. 벤처기업은 성장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필요로 한다. 이때 투자자들은 자금의 대가로 기업의 지분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투자가 필요한데도 경영권이 걱정돼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벤처기업들이 많았다.
업계에서도 복수의결권 제도의 도입을 요구해왔다. 창업자가 지분보다 많은 의결권을 행사하면 기업 경영권을 유지하면서도 투자 유치에 적극 나설 수 있어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가운데 미국·영국·프랑스 등 17개국은 이미 복수의결권 제도를 도입해 시행 중이다.
중기부는 2020년 10월부터 복수의결권을 골자로 한 법률안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기업가가 복수의결권을 지배구조 공고화와 편법 경영권 승계에 악용될 여지가 있다는 비판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지부진하던 법안은 중기부가 복수의결권제도를 핵심 과제로 중점 추진하면서 지난 4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총 투자 100억 이상, 발행주식 75% 동의 얻어야
통과안은 복수의결권 발행을 위한 요건을 담고 있다. 우선 비상장 벤처기업이면서 창업 이후 100억원 이상 투자를 받고, 마지막 투자는 50억원 이상이어야 가능하다. 또 창업자는 기업 설립 당시 정관에 기재된 발기인이면서 주식발행 시 등기이사로 기재돼야 한다. 동시에 투자유치로 창업자 지분이 30% 이하로 내려가거나 최대 주주 지위에서 벗어나게 되면 복수의결권 발행 요건이 충족된다.
발행 과정과 사후관리 규정도 엄격하다. 복수의결권 발행을 희망하는 기업은 정관에 관련 내용을 모두 기재하고 특별 결의를 거쳐야 한다. 이후 발행주식 총수 4분의 3 이상 동의를 얻어야 한다. 발행과 이후 변경되는 중요사항은 빠짐없이 중기부에 보고해야 한다. 만약 허위로 복수의결권을 발행하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악용 우려가 컸던 만큼 복수의결권 존속기간은 최장 10년으로 제한했다. 복수의결권 발행에 성공해도 10년 이후에는 보통주로 전환된다는 의미다. 비상장기업에서 상장기업으로 올라설 경우 기한은 최대 3년으로 줄어든다. 상속, 양도, 이사직 상실, 공시대상기업집단 편입 등의 경우에도 보통주로 바뀐다.
주주권익이나 창업주의 사적인 이해관계와 연관된 안건은 활용이 불가능하다. 이사진들이 받는 보수, 책임의 감면, 감사와 감사위원 선임, 배당 등의 안건에서는 복수의결권 주식도 1주당 1의결권만 갖는다.
중기부 관계자는 “조사한 바에 따르면 복수의결권 제도를 이용할 수 있는 기업이 300~400여개로 추산된다”면서 “제도 정착 과정에서 벤처기업들의 애로사항이 있다면 시장 추이를 보고 (추가적인) 규정 완화도 판단해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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