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집값이 최근 1년 새 급락하면서 부동산 버블 붕괴의 공포가 번지고 있다. 부동산 가격 하락이 상당 기간 이어지며 역성장 위기에 처한 독일 경제에 새로운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12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 공식 통계 기구인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기준 독일의 주택가격지수(HPI)는 153.27로, 전년 동기(170.14) 대비 10.0% 하락했다. 이 기간 EU 전체 지역의 HPI는 1% 감소하는데 그쳤다. 독일 HPI는 지난해 2분기 이후 매 분기 빠짐없이 하락세가 이어졌다.
독일 주택가격이 지속해서 하락세를 보인 것은 가파른 금리 인상에 따른 수요 악화와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어진 초저금리로 인한 장기 호황은 지난해 유럽중앙은행(ECB)의 긴축 전환으로 막을 내렸다. ECB가 지난해 7월부터 10회 연속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독일의 모기지 금리도 빠른 속도로 치솟았고, 집값 하락과 거래 감소가 동시에 일어났다.
높은 금융 비용과 원자재 가격 상승이 겹치면서 건설 프로젝트가 지연되거나 취소되는 사례는 날로 증가했다. 독일의 원자재 가격은 공급망 붕괴와 지정학적 위기 등의 여파로 팬데믹 이전 대비 40% 이상 치솟은 상태다. 영국 한 언론은 “주택과 상업용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들이 줄줄이 엎어지고, 건설사들은 파산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며 “많은 건설사가 파산하면서 연간 40만채의 신규 공급 목표를 세운 독일 정부의 목표 달성이 힘들어지고 있다”고 짚었다.
독일의 대표적인 싱크탱크인 이포(Ifo) 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지난달 5곳 중 1곳(22.2%)꼴로 신규 주택 건설 프로젝트가 취소됐다. 이는 1991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32년 내 최악의 실적이다. 클라우스 월레이브 이포 애널리스트는 “건설사들이 수주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며 “상황은 점점 더 악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독일 정부는 부동산 경착륙을 막기 위한 부양책을 서둘러 내놨지만, 업계에서는 과도한 관료주의 등으로 목표 달성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볼프강 슈베르트 라브 독일건설협회(ZDB) 전무이사는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호황을 누리던 주택 시장이 완전한 붕괴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직격했다. 건설사 프라우엔라트의 게레온 프라우엔라트 대표는 “독일 부동산 시장에 퍼펙트스톰이 몰려오고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위기가 예상보다 심각하고 장기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독일 경제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수급이 불안해진 가운데 가파른 금리 인상 효과, 최대 교역국인 중국 수출 둔화가 가세하면서 빠르게 냉각되고 있다. 독일은 지난해 4분기부터 2개 분기 연속 역성장하면서 기술적 침체에 진입한 이후 올해 2분기 0% 성장에 이어 3분기 다시 -0.1%(잠정치)로 마이너스 성장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러한 경제 상황은 단기에 개선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들로 동·서독 통일 후유증으로 장기 침체를 겪던 1990년대 ‘유럽의 병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하그리브스 랜즈다운의 수석 투자 애널리스트인 수잔나 스트리터는 “부동산이 독일 경제의 성장 동인 중 하나였다는 점에서 부동산 침체는 좋은 징조는 아닐 것”이라고 짚었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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