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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핫도그, 티슈마저 ‘슈링크플레이션’…용량 줄줄이 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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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치지도 않고 또 찾아온 ‘슈링크플레이션’

식품 업계의 불가피한 선택 vs 소비자 기만?

2023년은 ‘인플레이션’의 시대입니다. 고물가와 고용률을 잡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은행(연준)이 전투적으로 금리를 올렸죠. 한국은행도 미국과의 금리 차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열심히 달리고 있습니다. 워낙 안 오르는 게 없다 보니, 인플레이션이라는 단어는 여러 영역으로 스며들었습니다. 그 결과 인플레이션이라는 단어를 활용한 ‘○○플레이션’ 신조어가 꾸준히 만들어졌죠.

저희 더농부에서도 ‘○○플레이션’ 현상이 떠오를 때마다 꾸준히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혹시 기억하시나요? 곡물 가격이 오르는 ‘애그플레이션’, 우유 가격이 오르는 ‘밀크플레이션’, 이상 기온으로 인해 채소 가격이 오르는 ‘히트플레이션’, 점심값이 비싸진다 해서 ‘런치플레이션’까지……. 인플레이션이라는 단어를 남용하는 건 아닌가하고 의심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장기화되는 인플레이션은 수많은 파생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게티이미지뱅크

자주 쓰이는 감은 분명 있지만, 각각의 인플레이션 신조어는 시장이 주목하는 변화와 그에 따른 소비자들의 반응을 잘 보여줍니다. 또 같은 인플레이션이라고 해도 원인과 결과, 그리고 그 양상은 조금씩 다르죠. 하나를 알면 다른 인플레이션 현상도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오늘 다루게 될 ‘○○플레이션’과 관련된 단어는 바로 수년 전에 유행했던 ‘질소과자’입니다. 과자 봉지에서 충격을 보호하기 위해 질소가 들어갔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생긴 건 아닙니다. 봉지를 열었을 때 풍성하게 들어있어야 할 과자는 별로 없고, 질소만 잔뜩 들어있어서 만들어진 유행어였죠.

그런데 요즘은 과자뿐만 아니라 다른 음식들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하는데요. 포장을 열었을 때 느끼는 소비자들의 실망감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어. 오늘 더농부에서는 ‘슈링크플레이션’ 현상을 함께 살펴봅니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소비자들이 눈치채지 못할 만큼 식품 용량이 줄어드는 현상을 뜻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우선 ‘슈링크플레이션’은 무슨 뜻일까요? 영어에서 동사로 ‘양을 줄이다, 쪼그라들다’라는 뜻을 가진 ‘Shrink’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입니다. 회사들이 물가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내용물을 축소하는 현상을 뜻하는데요. 이 단어는 오래전부터 사용됐지만, 2015년 영국의 경제학자·정책 전문가인 ‘피파 맘그렌’이 사용한 뒤 지금의 의미로 잘 알려지게 됐습니다.

슈링크플레이션의 양상은 다양합니다. ‘질소과자’처럼 음식물의 용량을 줄이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형태죠. 최근 풀무원이 판매하는 ‘탱글뽀득 핫도그’는 핫도그 개수가 5개(500g)에서 4개(400g)로 줄었습니다. 가격은 8980원으로 그대로. 10g당 가격을 비교하면 500g 제품이 약 180원, 400g 제품이 약 225원입니다. ‘이론적으로’ 소비자들이 지불하는 금액은 더 늘어난 것이죠.

맥주를 비롯해 ‘슈링크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은 제품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다. ⓒ뉴시스

실제로 국내 식품 업계들은 올해도 제품 용량을 줄여왔습니다. 몇몇 사례들을 살펴볼까요? 오비맥주는 자사 맥주 브랜드 ‘카스’의 묶음 제품에서 1캔당 용량을 375㎖에서 370㎖로 줄였습니다(-10㎖, 2023년 4월). 동원F&B의 ‘동원참치 라이트스탠다드’는 100g에서 90g으로 참치 양이 소폭 줄었죠(-10g, 2023년 하반기). CJ제일제당이 편의점에 공급하고 있는 냉동 간편식 ‘숯불향 바베큐바’는 중량이 280g에서 230g으로 바뀌었습니다(-50g, 2023년 11월).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어지는 상품뿐만 아니라, 식당·레스토랑에서도 슈링크플레이션이 벌어납니다. 메커니즘은 똑같습니다. 고깃집을 예시로 들어볼까요? 삼겹살 가격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램 수만 줄이면 됩니다. 기본 반찬 가짓수를 6개에서 5개로 줄이고, 본래 제공되던 계란찜을 유료로 바꾸기도 하죠. 반찬 무한리필 서비스를 중단하고 리필에 돈을 부과하는 것도 그 일환입니다. 만약 카페라면? 따뜻한 아메리카노에 들어가던 샷 2개를 1.5개로 줄이는 것도 슈링크플레이션입니다.

‘크리넥스’는 자사 제품의 용기 디자인을 바꾸면서 티슈 개수도 줄였다. ⓒ크리넥스

이처럼 슈링크플레이션은 식품 분야에서 많이 일어나지만 다른 영역도 예외는 아닙니다. 주방·화장실 등에서 사용하는 생활용품에서도 슈링크플레이션이 나타나는데요. 국내에서도 ‘티슈’ 하면 떠오르는 미국의 화장지 제조업체 ‘크리넥스’는 미국에서 판매하는 곽 티슈 양을 65장에서 60장으로 줄였습니다. 인도에서 만들어지는 식기세척용 비누 ‘빔’은 155g에서 135g으로 줄었죠.

이런 사례들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슈링크플레이션 현상의 주된 특징이 보입니다. 업체들이 극적으로 용량을 줄이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앞서 설명한 핫도그의 경우처럼, 핫도그 개수가 하나 줄어드는 건 변화가 가시적으로 보이는 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티슈가 몇 장이나 들어있는지, 맥주가 몇 ㎖ 채워졌는지, 과자가 몇 개씩 들어있는지를 세세하게 기억하는 일은 아주 드물죠. 조금 줄인다고 해서 소비자들이 눈치채지는 않을 테니까요.

라면은 정부가 가격을 적극적으로 통제한 대표 품목 중 하나다. ⓒ뉴시스

물론 이런 선택이 신뢰를 저버리는 일로 비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업체 입장에서는 수익 보전을 최대한 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코로나19와 고금리 터널을 통과하면서 업체들의 부담이 가중된 것 또한 사실이니까요. 업체들 쪽에서 ‘그동안 많이 참았다’라는 말이 나오는 데엔 나름의 개연성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가격을 올리자니 소비자와 정부로부터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큽니다. 우선 가격 인상은 소비자들의 전방위적인 항의를 불러일으키는 방아쇠입니다. 만일 가격을 올렸다가 소비자들이 등을 돌린다면 수익성이 악화할 수도 있죠.

고금리·고물가 상황에서 물가 상승률을 최대한 통제하고자 하는 정부도 가격 인상을 반기지 않습니다. 지난 7월 정부 권고에 따라 라면 업계 빅 4(농심·오뚝이·삼양식품·팔도)가 주요 제품들의 가격을 줄줄이 인하했던 걸 기억하시죠? 먹거리는 서민들의 생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다른 분야보다 정부가 훨씬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소비자들의 불만, 정부의 통제 의지라는 두 개의 불안 요소가 편재한 상황. 업체들은 가격 인상이라는 가시밭길을 걸어가기보단 조용히 용량을 줄이는 편을 택했습니다. 가격은 인상하지 않되, 가격 인상에 준하는 효과를 창출하는 것. 이것이 바로 슈링크플레이션의 핵심입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물가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해 발언하는 모습. ⓒ뉴시스

정부도 이 같은 식품 업계의 슈링크플레이션을 주시하고 있는데요. 담당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기획재정부는 식품 업계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중입니다. 농식품부가 훨씬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데요. 원래 식량정책실장이 상황실장을 맡던 ‘농식품 수급상황실’을 차관 직속으로 격상시켰습니다.

또한 농식품부는 11월 2일 발표했던 ‘물가 전담 관리제’의 구체적인 방안을 11월 9일 발표했습니다. 빵, 우유, 스낵과자, 커피, 라면, 아이스크림, 설탕, 식용유, 밀가루 등 9개 가공식품에 품목별 담당자를 설정하고, 업체 관계자들과 소통을 강화한다고 합니다. ‘라면 사무관’, ‘커피 주무관’이 정말로 실현되는 것이죠.

잡으려고 해도 도통 잡히지 않는 물가. 가격을 올려 달아나고 싶은 업체, 어떻게든 가격을 잡고 싶은 정부. 슈링크플레이션은 물가를 둘러싼 정부·식품 업계의 딜레마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도덕성과 수익성 사이에서 줄타기를 성공하게 될 기업은 과연 누가 될까요? 식품 업계와 정부가 절충안을 잘 찾아서 더 많은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묘안을 도출해 내기를 기대해 봅니다.

더농부 인턴 유승재

제작 총괄 : 더농부 선임에디터 공태윤

nong-up@naver.com

더농부

참고=

한국경제, <“일 커질 줄 몰랐네”…일주일째 소식 없는 ‘라면 사무관’ [관가 포커스]>

한국경제, <가격 안 오른줄 알았더니 속았네…정부 물가 통제의 ‘역설’>

뉴시스, <농식품부, 우유·라면 등 9개 품목 담당자 지정 가격 밀착 관리>

문화일보, <눈물의 ‘슈링크플레이션’ ...식당가 반찬 수 줄이고 리필 안해주고>

세계비즈, <런치·슈거·김치·누들… 판치는 ‘OO플레이션’에 서민 울화통>

연합뉴스, <오비맥주, 카스 묶음상품 용량 5mL 줄였다…가격은 유지>

연합뉴스, <핫도그 1봉 5개가 4개로 줄었다…‘슈링크플레이션’ 꼼수>

연합뉴스, <가격 인상 대신 용량 줄이기…기업들 ‘슈링크플레이션’ 확산>

소비자경제, <[기자의눈] 슈링크플레이션에 ‘고통’받는 소비자들>

에너지경제, <오늘부터 신라면·새우깡 등 가격 인하…업계 주력제품은 “동결”>

포인트데일리, <쉿! 잘 보세요, 슬그머니 용량 줄이고 개수 줄이는 식품업계>

한겨레, <슈링크플레이션 확산, 소비자 대처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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