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유럽 동화나 민담은 대개 높은 신분들의 이야기지만, 우리나라 민담은 보통 백성들의 이야기다. 상상력이나 환상적인 면에서 서구를 뛰어넘는 파격적인 면을 갖고 있다.”
‘황석영의 어린이 민담집(휴먼큐브)’을 펴낸 황석영 작가의 말이다. 14일 오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출간간담회에서 황 작가는 “세계로 나가기에 앞서 ‘나는 누구인가?’를 정확히 아는 정체성의 확립이 필요하다”며 “민담이야말로 우리 이야기의 원천이며, K-콘텐츠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이 우리 콘텐츠를 바탕으로 상상력과 창조력을 발휘하도록 할아버지의 마음에서 집필했다”고 설명했다.
황 작가는 지금까지 펴낸 작품들은 모두 민담에 기초한 ‘민담 리얼리즘’이었다고 설명했다. 백성의 일상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것. 그는 “민초들의 일상이 역사로 넘어가기 전 중간 지대가 민담의 영역”이라며 “민담이 있어야 시대적 의의가 생기고 역사로 넘어간다”고 강조했다.
민담 시리즈는 총 50권으로 150개의 이야기를 담았다. 20여년간 이야기를 수집했고, 5년간 기획해 이번에 1~5권까지 내놨다. ‘한국 구비문학 대계’ ‘한국 구전 설화’ ‘대동야승’ 등 기존 민담집을 꼼꼼히 살펴 재해석했다. 전국에 여러 버전이 존재하는 민담의 경우 발원지의 원형을 따랐고, 그렇지 않은 경우 재미를 우선했다. 황 작가는 “‘바리데기’의 경우 전라도판이 재미있으나 ‘강신무’의 원형에 따라 황해도 버전을 담았다”고 전했다.
민담 선정 기준은 ‘신명’이다. 황 작가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가 ‘한(限)’이라고들 하지만, 그것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 미학 평론가가 부여한 개념”이라며 “우리 민족은 고통과 절망에 굴복하고 머무르지 않고, 춤과 노래, 그리고 이야기로써 역경을 웃음으로 풀고 희망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해님 달님’ 속 오누이가 호랑이에게 어머니를 잃고 자신들의 목숨도 위협받는 상황에서 슬퍼하기보다 들기름으로 호랑이를 골탕 먹였던 재치와 익살을 예로 들었다.
이번 작품을 통해 한국민담을 세계에 알릴 예정이다. 황 작가는 휴먼큐브 출판사와 ‘푸리미디어’란 회사를 공동 설립해 애니메이션 이전 수준의 영상인 ‘무빙툰’과 민담을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등으로 서비스한다. 황 작가는 “‘콩쥐팥쥐’와 ‘신데렐라’ 이야기 구조는 매우 유사하지만, ‘신데렐라’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영화를 통해 알려졌기 때문”이라며 “전 세계에 우리 이야기의 재미와 우수함을 알릴 것”이라고 전했다.
민담 작업을 하면서 상상력이 자극됐다는 황 작가는 차기작으로 소설 ‘나무(가제)’를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새만금에 650년 된 나무가 하나 있는데, 그 나무가 내레이션하는 소설을 생각 중이다”라고 말했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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