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의 엔진이 식어가고 있다. 고부채·고금리가 장기화하는 데다 성장을 주도했던 중국까지 저성장 기조에 접어들면서다. 이스라엘-하마스 간 전쟁의 확산 등 지정학적 요인까지 겹치면 현재 예상보다 세계경제가 더 추락할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도 제기됐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14일 ‘2024년 세계경제 전망’을 발표하고 올해 세계경제성장률을 지난해보다 0.3%포인트 떨어진 3.0%로 전망했다. 내년 세계경제성장률은 2.8%로 예상했다. 코로나19 발발 전이었던 2019년 성장률과 같다. 전망이 맞는다면 세계경제성장률은 2021년 6.1%를 정점으로 매년 줄어 3년 만에 다시 2%대로 회귀한다.
이시욱 KIEP 원장은 “글로벌 경기의 안정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시시각각 발현하고 있다”면서 “최근 견조한 고용시장을 바탕으로 한 미국경제가 세계경제 회복을 이끌고 있긴 하지만 코로나19 이전 5년 성장률 평균에 비하면 여전히 낮다”고 말했다. 2024년 전망치에 대해서도 “상당히 낮은 수치”라고 밝혔다.
KIEP는 급속한 성장저하의 원인으로 막대한 부채를 꼽았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주요국들은 빠르게 유동성을 풀었는데, 부채가 급증하면서 성장 제약요인이 됐다는 설명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세계 부채는 2019년 말 GDP 대비 229%에서 2020년 258%까지 늘어났다. 2022년 238%로 소폭 감소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특히 공공부채가 92%에 달하고 비금융기업부채도 91%에 이른다.
고금리 기조도 성장속도를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지목됐다. 각국의 중앙은행은 막대한 유동성 공급으로 치솟은 물가를 잡기 위해 높은 기준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금리가 높으면 가계의 상환부담과 기업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지고, 투자와 소비 등 민간활동에도 제약이 걸린다. 게다가 금리하락 시점도 불투명해 당분간 ‘중·고금리-고부채-중물가’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경제는 중장기적인 저성장 경로에 진입했다고 분석했다. 올 3분기 성장률이 전년동기 대비 4.9%를 기록해 회복세를 나타냈지만 내수침체, 물가하락, 청년고용 악화 등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어서다. 특히 부동산 부문이 중국경제의 약점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연관 산업은 중국 GDP 대비 30%를 차지하는데,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투자·판매·자금조달 등이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KIEP는 중국경제가 부동산 부실로 급격한 금융위기에 처할 가능성은 작지만, 구조적 문제로 과거 수십년간의 고성장을 멈추고 중장기적으로 3~5%대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판단했다. 해외직접투자 유입과 부동산에 의존한 경제시스템이 지속 가능하지 않은 상황에서 성장률을 제고하기 위한 대안이 마땅치 않아서다. 중국 저성장이 현실화하면 주로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인근 국가가 큰 타격을 받을 것이란 경고도 덧붙였다.
지정학적 충돌도 하향요인으로 거론됐다. 2020년 2월24일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공급망 충격과 유가상승, 원자재 수급 차질 등의 악영향이 경제에 누적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지난달 7일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에서 전쟁까지 벌어짐에 따라 전쟁 확산과 유가급등으로 이어지면 물가안정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경제성장률에 큰 충격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만 KIEP는 지금의 저성장이 구조적으로 장기화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안성배 KIEP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부채 문제가 해결되는데 시간이 걸리고, 이후에 얘기할 부분”이라면서 “지금은 부채가 커지면서 구조적으로 저성장 국면이 나타나는 초기로 볼 수 있으나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고 언급했다.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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