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세계경제는 각국이 높은 수준의 장기 국채금리를 유지하고, 미국의 강달러가 길어지면서 물가상승률 둔화세가 예상보다 더딜 것이라는 국책연구기관의 분석이 나왔다. 국제유가는 이스라엘?하마스 간 전쟁 및 미국 전략비축유 재고 감소 등 공급불안 요인으로 당분간 고유가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14일 발표한 ‘2024년 세계경제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내년 한국은 주요국의 통화긴축 장기화, 국제유가 변동성 확대, 환율의 파급영향 등으로 물가상승률 둔화 속도가 당초 전망보다 완만해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됐다. 긴축기조가 예상보다 장기화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인플레이션 둔화 흐름 유효…다만 목표 수준 상회할 것”
보고서는 미국의 장기 국채금리가 내년 상반기까지 5%대의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글로벌 투자은행의 금리 전망에 따르면 미국의 기준금리 중간값은 올해 4분기부터 내년 1분기까지 5.50%를 유지하다 내년 2분기 5.25%로 소폭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미국의 올해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전기비 연율 속보치)이 전분기보다 높은 4.9%를 기록해 예상치(4.5%)를 상회했고, 국채금리 상승과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인상 압력이 높아질 수 있으나 4분기에는 성장세가 둔화할 것으로 전망하면서다.
독일 역시 국채금리가 미국 국채시장의 영향권에 들어 유로지역 인플레이션이 중기 목표치(2%)를 상회하고 둔화 속도가 더뎌 고금리 장기화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측했다. 다만 유로지역은 부진한 경제성장 흐름을 보이고 통화긴축 기조의 파급효과가 시차를 두고 나타나면서 향후 경제지표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의 경우 통화정책 변경 추진 상황에 따라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달 일본은행은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수익률곡선통제(YCC)의 추가 유연화를 결정하면서 사실상 YCC의 폐지라는 평가와 금융완화기조를 이어갈 것이라는 평가가 공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가상승률이 예상보다 더딘 둔화세를 보이면서 금융완화정책 변경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강달러 기조 지속…美 통화정책 변화 변수
KIEP는 미 연준이 2% 인플레이션 중기 목표 달성까지 고금리의 장기화 가능성이 커지면서 강달러가 예상보다 길어질 것으로 분석했다. 미 재정적자 확대로 미 국채 공급은 늘어나는 반면 수요는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되는 점 역시 미 국채의 고금리 상방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미 연준의 금리 인상 중단, 금리 인하 가능성 제기 등 미국의 통화정책 변화 움직임이 나타날 경우 달러화가 약세로 반전될 불확실성도 상존한다.
이는 호조를 보이는 미국 경기와 대비해 다른 주요국의 경기회복세가 둔화하고 있어 달러화 강세 압력을 더하고 있지만, 고금리에 따른 미국 수요 및 경기 둔화 효과가 나타나는 시점부터 달러화 강세가 반전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위안·달러 환율은 글로벌 수요 회복으로 경기 개선, 내수 회복세, 중국 정부의 추가 부양책 등으로 하방 압력을 받을 것으로 관측했다. 다만 중국-러시아 블록의 지경학적 분절로 인한 손실, 중국 부동산 리스크 장기화 등이 위안·달러 환율의 상방 압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돼 이 요인들의 상대적 중요도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경제 블록 간의 교역을 제한하는 가정하에, 중국-러시아 블록과 같은 원자재 의존 경제의 경우 다른 블록에 비해 GDP 손실이 더 큰 것으로 추계했다.
엔화의 경우에는 미·일 통화정책의 차별화된 방향성과 큰 내외 금리차로 약세가 예상되지만, 과도한 엔화약세에 따른 일본은행의 정책 대응 등으로 엔화 약세가 제한될 가능성도 있다. 원·달러 환율의 경우 강달러 기조로 고환율이 예상되지만, 미 연준의 통화정책 변화 기대감이 고조될 경우 원·달러 환율이 하락할 것으로 봤다. 한국이 대규모 순대외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고, 내년 경상수지 흑자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에서 원·달러 환율의 안정 요인으로 작용하며, 미 연준의 통화정책이 금리인상 중단 등 시장 기대가 높아질 경우 환율 하락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제유가, 최대 변수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보고서는 내년 유가는 다수의 공급불안 요인으로 인해 고유가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단기적으로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향방이 주요 변수로 꼽혔다. 지난달 28일 기준 양측 사망자 수가 9400여명에 달하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점령하고, 이란이 개입할 경우 유가 폭등 가능성이 존재한다. 앞서 1973년 10월 제4차 중동전쟁 당시 이란,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등이 원유 가격인상, 생산축소, 수출금지를 단행한 결과 유가는 배럴당 2.90달러에서 1974년 1월 11.65달러로 4배 폭등한 바 있다.
미국 전략비축유 재고 감소도 국제유가를 끌어올리는 주요인이 지목된다. 바이든 정부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유가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전략비축유를 대량 방출했고 이 결과 지난달 기준 재고는 40년 내 최저치인 3억5100만 배럴까지 하락했다. 이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2010년 대비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향후 유가가 상승할 경우 전략비축유 방출로 대응하기 어렵다고 보고서는 전망했다.
다만 유가하락 유발요인 역시 상존한다. 지난달 엑슨모빌이 셰일가스 생산업체 파이어니어를 595억달러에 인수하고 셰브론은 석유·천연가스 생산업체 헤스를 530억달러에 인수하는 등 거대 석유기업들이 공격적으로 생산성을 확대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비철금속·곡물, 생산량 증가 따른 하향 안정세 전망
내년 비철금속과 곡물 가격은 주요 생산국들의 공급량 증가로 가격이 하향 안정세를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추후 수요 증가에 따른 상습 압력 가능성도 여전하다. 보고서는 국제구리연구그룹(ICSG) 전망을 인용, 내년에 46만7000t의 전기동 공급과잉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구리 채굴량은 내년 3.7% 증가하고, 알루미늄 역시 인도, UAE 등의 주요 생산 기업이 증산계획을 발표하면서 공급량 확대가 기대된다.
수요 측면에서는 당분간 상·하방 요인이 혼재할 것으로 봤다. 긴축적 통화정책으로 인한 세계경기 침체 장기화 가능성이 수요 확대를 억제하는 요인으로 거론되는 반면 주요 국가들의 인프라 투자는 수요 개선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지목된다.
국제곡물이사회(IGC) 역시 2023~2024년도 세계 곡물 공급량(30억500만t)과 생산량(23억9700만t)이 2022~2023년도에 비해 각각 2.3%, 2.8%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러시아, 캐나다, 호주 등 주요 국가에서 기후여건 개선과 작물 경작지 확대 등으로 생산량이 증가할 것이란 분석이다. 다만 엘니뇨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잠재적 위험 요인으로서 상존하는 점은 배제할 수 없다. 주요 기후예측 모형에서 엘니뇨가 내년 봄까지 지속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세종=이동우 기자 dw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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