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비통 가방을 잘라 지갑으로 리폼해 준 업자에게 1500만원을 물어주라고 한 법원 판결의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무릎이 해진 바지를 잘라서 반바지를 만들어 입으면 바지 제조사에 로열티를 내야 하느냐”라는 지적까지 나왔다.
“민간의 손재주, 규제가 막아서면 경제 양극화 계속” 지적
13일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페이스북에 “무릎이 해어진 바지를 잘라서 반바지로 만들어 입고 다니면 원 바지 제조사에 로열티 내야 하나”라며 “상표법을 포함한 모든 지식재산권에는 소진원칙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소진원칙이란 처음 물건을 팔 때 로열티를 받았다면 그 물건에 깃든 지식재산권이 소진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이후에 그 물건이 어떻게 이용되거나 판매되더라도 추가 로열티를 요구할 수 없다.
박 교수는 “이 때문에 우리가 휴대전화를 중고로 판다고 해서 그 안에 들어간 부품의 특허권자들에게 로열티를 떼어주지 않는 것”이라며 “루이비통은 처음 가방을 만들어 팔 때 자신의 상표에 대한 가치를 포함해서 물건값을 받았고, 이 가방을 산 사람이 이것을 고쳐 쓴다고 해서 또 로열티를 요구할 수는 없다”라고 부연했다.
상표권 침해는 루이비통 제품이 아닌 물건에 루이비통 상표를 붙여 혼동시키는 경우, 이른바 ‘짝퉁’ 물건일 경우에만 발생한다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리폼 루이비통 지갑을 만들려면 순정 루이비통 가방을 사야 하기 때문에 루이비통 입장에서 경제적 손해가 없다”라고 강조했다.
또 박 교수는 “리폼업자는 물건을 판 적이 없다. 고객들의 물건을 고쳐줬을 뿐”이라며 “대중들이 자신의 지식, 손재주, 열정으로 블루오션을 개척하는 것을 각종 규제가 막아설 때마다 경제 양극화는 계속 방치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저런 식이라면 청바지를 일부러 색을 닳게 해서 중고로 파는 분들도 전부 원제품 청바지 회사에 로열티를 내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법원, 루이비통 가방 리폼해 지갑 등 만든 리폼업자에게 1500만원 배상 판결
앞서 지난 12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63부(박찬석 부장판사)는 루이비통이 리폼업자 A씨를 상대로 제기한 상표권 침해금지 등 소송에서 “A씨는 루이비통의 상표가 표시된 가방의 원단을 사용해 리폼 제품을 제조해선 안 되고 루이비통에 손해배상금 1500만원을 지급하라”라고 판결했다.
A씨는 2017~2021년 고객이 건네준 루이비통 가방 원단을 이용해 크기, 형태, 용도가 다른 가방과 지갑을 제작했다. 리폼 제품 1개당 10~70만원의 제작비를 받았다.
루이비통은 A씨가 자사 상표의 출처표시 및 품질보증 기능을 저해해 상표권을 침해했다며 작년 2월 소송을 제기했다.
A씨 측은 리폼 제품이 상표법상 ‘상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같은 형태의 물품을 반복해서 생산하는 ‘양산성’과 생산자에서 소비자에게 도달하기까지 여러 단계에서 교환·분배되는 ‘유통성’을 갖춰야 상품으로 평가할 수 있는데, 리폼 제품은 이런 속성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아울러 가방 소유자가 리폼 제품을 루이비통에서 제작한 원제품으로 혼동할 우려가 없기 때문에 상표법상 ‘상표의 사용’을 했다고도 볼 수 없다고도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리폼 제품도 상품에 해당하고 A씨는 루이비통의 상표를 사용했다고 봐야 한다”며 루이비통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리폼 제품이 교환가치가 있기에 독립된 상거래의 목적물이 되는 이상 상표법상 상품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제품이 현실적으로 유통되지 않았고 양산성이 없다고 해도 상표의 출처표시기능은 보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또 “A씨의 고객이 리폼 제품의 출처를 오인하진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리폼 제품을 본 제삼자 등 일반 소비자는 출처를 혼동할 우려가 분명히 있다”며 “A씨는 루이비통의 상표를 사용한 게 맞다”고 판시했다.
구나리 인턴기자 forsythia2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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