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사건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그 여정을 함께하면서 점점 가까이, 눈을 뚫고 갈 수 있다.”
한강 작가가 ‘작별하지 않는다’를 통해 제주 4.3 사건이 남긴 아픔을 들여다본다.
14일 서울 양천구 목동 한국방송회관에서는 ‘작별하지 않는다’로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지난 9일 프랑스 파리에서 발표된 메디치 외국문학상의 올해 수상작으로 결정됐다.
메디치상은 1958년 문학 애호가이자 후원가인 갈라 바르비장과 소설가 장피에르 지로두가 제정한 상으로, 그해 프랑스어로 번역 출간된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메디치 외국문학상의 역대 수상자로는 밀란 쿤데라(1973), 움베르트 에코(1982), 오르한 파묵(2005) 등이 있다.
이번 수상은 한국 작가 최초의 수상이자, 2016년 ‘채식주의자’로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가장 최근 작품이 거둔 성과로 더욱 의미가 싶다.
이날 한강 작가는 먼저 감사한 사람들은 언급하며 수상 소감을 전했다. 그는 “번역을 맡아주신 최경란, 페이르 비지우 선생님께 감사드리고 싶다. 출판사 분들이 한 마음으로 이 책을 위해 많은 일을 해주셨다. 편집장님을 비롯해 관계자 분들께 감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책 집필 과정에서 도움을 준 분들에 대해서도 “이 책을 쓰는데 도움을 주신 분들도 생각이 난다. 제주 방언을 배우긴 했지만, 아주 잘하진 못해서 도움을 청했었다. 제자였던 친구에게 부탁을 해서 제주 방언이라는 것은 확실하지만, 제주 방언을 모르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느낌으로 번역 과정을 거치고 싶다고 했었는데 몇 번 주고받는 작업을 했었다. 그 친구에게도 고맙다. 많은 자료들이 필요했는데 사상 연구소가 수십 년에 걸쳐 많은 자료를 모아뒀었다. 증언록도 여러 권에 걸쳐 출간을 하셨다. 그것들을 따라 읽는 것도 중요했다. 이 책을 쓰고 있다는 걸 아시고 사진 자료나 몇 가지 중요한 자료를 추가로 보내주셨다. 많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1948년 제주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과 희생자들의 가족사를 담고 있다. 지난 8월 해외에서는 처음으로 프랑스의 대표 출판사 중 한 곳인 그라세에서 ‘Impossibles adieux’라는 제목으로 최경란, 페이르 비지우의 번역으로 출간됐다.
한강 작가는 이 책을 집필한 계기에 대해 “첫 두 페이지에 실린 꿈을 실제로 2014년 여름에 꿨었다. 그걸 기록을 해뒀었다. 이 꿈이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내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다음을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하며 몇 년을 보냈다. 여러 버전으로 이 소설을 써봤다. 그러다가 마침내 세 여성이 이어달리기를 하듯이, 이어지는 구조를 탐색 끝에 찾아내 쓰게 됐다. 완성하기까지 모두 7년이 걸린 셈”이라며 “제게는 최근작이고, 지금까지도 내게 가깝게 느껴지는 소설이기 때문에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더 기뻤다”고 말했다.
‘인간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책의 주제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이 책이 어떤 책이냐고 물으면 여러 가지로 대답을 했었다. 인간성의 밤 아래로 계속해서 내려가 촛불을 밝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제목에도 이 같은 메시지가 잘 담겼다. 그는 “작별하지 않는다는 뜻은 ‘작별하다’는 말의 부정문이지 않나. 작별한다는 것은 헤어진다는 것도 있지만 이별을 짓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별을 고하지 않고, 이별을 행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별을 고하지도 행하지도 않아서 정말로 작별하지 않은 상태. 그 상태가 이 제목의 의미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애도를 끝내지 않는, 작별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그 마음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Impossibles adieux’라는 프랑스에서 출간된 제목에 대해선 “제목을 어떻게 번역할지 궁금했다. 일단은 한국어에선 주어를 생략할 수 있다. 작별하지 않는 행위의 주체가 나일수도 있고, 너일 수도 있다. ‘그’나 또는 그들, 또는 우리일 수 있다. 이 문장은 열려있는데, 유럽에서는 주어를 정해야 했다. 나로 할 것인지 우리라고 할 것인지 궁금했는데 불가능한 작별이라는 제목을 붙여서 절묘하게 주어를 특정하지 않고 의미를 살려둔 것 같아 좋았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이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느끼길 바라는 마음도 전했다. 그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그 여정을 함께하면서 점점 가까이, 눈을 뚫고 갈 수 있다. 그 사건의 깊은 어둠 속으로 내려가게 되는데, 그런 과정이기 때문에 그 사건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주인공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 사건에 가깝게 감각적으로 연결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간 있었던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상황에 대해 쓴 ‘소년이 온다’ 이후, 또 한 번 역사적 사건을 다룬 한강 작가는 추후 더 개인적인 이야기로 돌아오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소년이 온다’ 이후 ‘작별하지 않는다’를 완성했는데, 9년 정도를 쓴 것이다. 두 소설이 하나의 짝인 셈인데, 이제는 더 이상 안 하고 싶다. 앞으로 제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좀 더 개인적인 것이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눈이 계속 내리고, 너무나 추웠는데 이제 봄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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