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가 정계를 떠난 지 7년 만에 외무부 장관으로 깜짝 복귀했다. 영국은 현역 의원만 장관직을 맡을 수 있어 정부는 캐머런 전 총리에게 귀족 작위를 수여하고 상원의원이 되도록 했다.
캐머런 전 총리는 2010년 보수당 집권 시대를 열고 영국 정부를 이끌었으나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국민투표가 가결된 후 책임을 지고 2016년 7월 물러났다. 총리가 퇴임한 후 각료로 내각에 참여하는 것은 특이하지만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영국에선 18세기 이래로 총리 14명이 다른 내각에서 일했다. 캐머런 전 마지막 사례로는 알렉산더 더글러스 흄이 1964년 총리직을 사임한 후 1970년부터 1974년까지 외무부 장관을 지낸 바 있다.
캐머런 자신도 장관 임명 발표 직후 인터뷰에서 “지난 7년간 정치 일선에선 빠져있었지만 11년 보수당 대표, 6년 총리 경력으로 도움을 줄 수 있길 바란다”며 자신의 등장이 이례적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위기를 포함해 여러 세계적 도전에 직면해있다”며 “이런 심각한 세계적 변화 속에서 동맹 곁을 지키고 동반관계를 강화하며 우리의 목소리를 확실히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계를 떠났던 캐머런 전 총리를 장관에 기용하기 위해 정부는 그를 상원의원으로 만들었다. 양원제인 영국에서 상원(House of Lords)의 경우 귀족만이 맡는다. 국왕이 임명하거나 귀족끼리 선거를 한다. 정부는 하원의원이 아닌 캐머런을 내각에 합류시키기 위해 급히 왕실을 통해 귀족으로 임명하고, 경(Lord)가 된 캐머런 전 총리는 상원의원이 됐다.
대표적 친중파인 캐머런이 외무장관에 기용됨에 따라 영·중 관계는 개선될 것이란 기대가 나오고 있다. 캐머런은 2015년 총리 시절 중국을 국빈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맥주를 마시고 셀카를 찍는 등 대표적 친중파로, 영·중 관계의 황금기를 연 것으로 유명하다. 총리로 재직하는 동안에도 중국이 힝클리포인트 원자력발전소 지분을 인수할 수 있게 하는 등 중국의 대영 투자를 대거 개방했다. 그는 총리 퇴임 이후에도 시진핑 주석의 일대일로를 지원하기 위한 10억달러 규모의 영·중 투자 펀드를 설립하는 등 다양한 중국 관련 일에 참여해왔다. 리시 수낵 총리의 대변인은 “현재 대 중국·중동 외교 정책이 캐머런 장관 아래에서도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캐머런의 등장은 보수당 온건파를 끌어들이는 효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과거 중국과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인물이란 점에서 의회 내 반중 인사들의 불만이 커질 수도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개각에 관련해 “현 정권의 약점이 두드러졌다”고 평가했다. 외무장관을 찾으러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다는 점은 정부에 인사 자원이 없음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여론조사업체 유고브의 설문조사에서 캐머런 전 총리 복귀에 관해 38%가 ‘잘못된 결정’이라고 평가한 반면 ‘잘한 일’이라는 답은 24%였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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