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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업에 조건만남까지, 막장 치닫는 최근 10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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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포테이토 지수 80%] ‘사채소년’ 현실에서 한발 나아간 영화의 힘

(이 콘텐츠에는 약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어른이 부재한 세상에서 아이들은 갈 길을 잃는다. 단 한명의 어른이라도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거나, 그들의 흔들리는 눈빛을 마주해 바라본다면 세상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알고있지만 이뤄지기 어려운 현실은 언제나 영화보다 지독하다.

10대가 겪는 잔혹한 세상을 담은 영화 ‘사채소년'(제작 26컴퍼니)은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채’와 ‘소년’이라는 두 개의 이질적인 단어가 맞붙은 제목에서부터 작품의 개성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영화는 부모가 진 사채 빚 독촉에 시달리던 18세 소년 강진(유선호)이 자신을 괴롭히던 사채업자가 내민 검은 손길을 잡고 또래를 상대로 사채놀이를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비극을 그리고 있다. 아이들이 사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채 사채 빚에 시달리고, 그릇된 욕망으로 ‘조건 만남’에 빠져드는 동안 어린들은 철저히 이들을 외면하고 방관한다. 일면 이들의 방황과 일탈을 부추기기도 한다.

학교와 가정은 물론 공권력조차 아이들을 보호하지 않는 세상에서 아이들은 나름의 서열을 정하고, 정글 같은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친다. 영화가 선택한 ‘사채’는 관심과 보호의 울타리에서 벗어난 아이들이 만나는 ‘지옥같은 세상’의 또 다른 이름이다. 영화 ‘사채소년’을 흔한 10대 학원물로만 바라볼 수 없는 이유이다.

● 우연히 손에 넣은 돈 봉투로 시작된 사채의 늪

주인공 강진은 깡마른 채구에 무심하게 자란 머리카락으로 커다른 눈을 가리고 다니는 고등학교 2학년생이다. 부모의 사채 빚에 시달리는 그는 지방으로 숨어버린 부모가 떠난 빈집에서 홀로 지낸다.

보호받지 못하는 그의 처지를 먼저 알아본 건 소위 ‘일진’으로 불리는 같은 반 아이들. 강진은 부모의 재력과 권력을 등에 업은 남영(유인수) 무리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제대로 저항 한번 못하고 이리저리 휘둘린다.

그런 강진이 ‘각성’하는 계기는 집을 찾아온 사채업자 랑(윤병희)이 흘린 돈 봉투를 발견하면서다. 5만원권 지폐 다발이 들어있는 봉투를 손에 넣고 묘한 자신감이 차오르는 것도 잠시. 이를 눈치 챈 남영이 강진의 돈을 빼앗으면서 갈등은 증폭된다.

강진과 남영의 관계를 알게 된 랑은 강진을 자극하면서 같은 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사채놀이를 해보라고 권한다. 랑으로부터 추심 방법을 전수받은 강진은 돈을 빌려주고 높은 이자까지 더해 돌려받는 과정에서 힘이 생기는 듯 쾌감을 느끼면서 겉잡을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든다.

강진에게 돈을 빌리는 아이들의 심리는 사채에 손을 대는 어른의 욕망과 다르지 않다. 지금 당장 신상 운동화를 갖고 싶고, 새로 나온 바이크를 사고 싶은 욕심이 사사채로 이어진다. 이에 강진은 ‘사채는 사랑을 채워주는 존재’라고 일갈하면서 점차 세를 확장해간다. 급기야 ‘신용카드 돌려막기’에 지친 담임 교사까지 강진을 찾아올 지경에 이른다.

● 현실에서 출발하지만 현실에만 머물지 않는…

고등학생과 사채의 관계는 이미 몇년 전부터 각종 뉴스를 통해 접해왔던 ‘믿기 어려운 현실’이다. 불법 도박사이트에 빠진 10대들이 사채에 손을 대 빚더미에 앉은 사건은 요즘도 꾸준히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영화는 이런 현실에서 출발하면서도 그 현실을 다루는 데만 머물지 않는다. 성숙하지 않고 판단력도 약한 10대가 어떻게 사채에 빠져드는지를 보여주면서도 한편으론 ‘어른의 부재’에 대해 더 깊이 이야기한다.

극 중 강진의 초등학교 동창인 다영(강미나)은 부모의 사업 실패 사실을 친구들에게 숨기고 돈을 벌기 위해 ‘조건 만남’을 시도한다. 결국 경찰에 덜미가 잡히지만, 미성년자의 ‘조건 만남’을 개도해야 할 경찰은 오히려 다른 꿍꿍이로 아이들을 궁지로 몰아간다.

영화는 학교를 배경으로 10대인 강진과 남영, 다영을 통해 이야기를 펼치지만 단 한번도 이들의 부모를 등장시키지 않는다. 어른은 모르는 아이들의 세계를 다룬 여러 작품들이 ‘마지막 보루’처럼 부모의 존재를 내세워 일말의 안전 장치나 위기감을 구축하는 방식과 완전히 다른 선택이다.

최근 학교 폭력이나 10대에 퍼진 약물 등을 다룬 학원물이 다양하게 변주하고 있지만 이들 가운데 ‘사채소년’이 단연 돋보이는 부분은 이처럼 어른의 부재를 통해 냉정한 현실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 속에서 아이들을 서로를 자극하고 자극받으면서 현실을 자각한다. 온전히 10대들의 세상에서 깨지고 부딪히면서 성장하는 모습이다. ‘사채소년’의 이런 선택 역시 최근 몇몇 학원들이 10대들을 악랄한 빌런처럼 묘사해 자극적인 캐릭터로 소비하는 것과도 분명히 차별화된다.

스스로 깨닫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채소년’ 속 아이들의 모습은 비참한 현실에 피어나는 한줄기 희망으로 보인다. 비극의 이야기가 일면 따스하게 다가오는 까닭이기도 하다.

● 물리적인 폭력보다 더 잔혹한 욕망과 감정의 폭력

‘사채소년’은 신인 감독과 신인 배우들이 날것 그대로의 에너지로 완성한 작품이란 사실에서도 주목받는다. 연출을 맡은 황동석 감독은 단편 ‘유에스비’와 독립영화 ‘갓길로 달리는 코뿔소’ 등을 통해 역량을 키웠고 이번 영화를 통해 상업 장편영화를 처음 내놓았다.

앞서 단편영화 ‘거절 할 수 없는 제안’을 통해 사채에 얽힌 10대 청소년의 이야기를 짧게 풀어낸 황동석 감독은 ‘사채소년’으로 그 주제를 더욱 확장한다. ‘사채소년’의 주요 관객층을 형성할 1020세대에겐 공감을, ‘어른 관객’에겐 반성을 일깨우는 영리한 선택이다.

또한 ‘사채소년’에는 10대 학원물에 으레 나오는 피가 낭자 폭력의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다. 물리적인 폭력은 최대한 배제하고, 그보다 더 무서운 감정과 욕망이 부딪히는 폭력으로 대체한다.

황동석 감독은 “처음 영화에 접근할 때부터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근본적인 것에 중점을 뒀다”고 밝혔다.

● 신인 배우들의 앙상블, 변화하는 캐릭터 장점

주연진을 신인들로 캐스팅해 이들의 활약을 이끌어낸 부분은 ‘사채소년’의 지닌 또 다른 미덕이다.

주인공 강진을 연기한 유선호는 지난해 tvN 드라마 ‘슈룹’으로 주목받은 신인.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을 통해 얼굴을 알렸고 ‘슈룹’으로 연기에 도전한 그는 1년만에 영화 주연으로 성장했다. 부모가 떠난 집을 홀로 지키는 강진이 품은 우울한 분노가 유선호를 통해 절묘하게 표출된다.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을 마른 체구와 덥수룩한 헤어스타일로 표현한 선택도 영리하다.

유선호는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과연 내가 잘 끌고 갈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고 했지만, 단역을 제외하고 영화 출연이 처음이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제 몫을 해낸다. 개성 강한 그의 외모는 ‘일진’으로부터 괴롭힘을 받는 상황에서 사채를 통해 점차 힘을 얻어가는 강진의 이중적인 모습을 절묘하게 표현한다.

강진과 대적하는 남영 역의 유인수는 라이징 스타로 인정받는 진가를 이번 영화에서 증명한다.

남영은 든든한 부모를 믿고 강진을 괴롭히다가 비극의 문을 여는 인물이다. 이후 강진의 일격에 휘청이다가 이내 반격을 시도하는 등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인다. 안정감을 주는 중저음으로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는 유인수 목소리는 관객이 남영이라는 인물에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여기에 그룹 구구단 출신으로 연기자로 도약 중인 강미나 역시 부모의 부재로 방황하는 다영 역을 맡아 스크린에 데뷔한다. 드라마 ‘호텔델루나’ 등을 통해 검증받은 연기력은 ‘사채소년’으로도 이어진다. 강진과 더불어 사건의 한 축을 맡아 ‘어른이 없는 세상’에서 부딪히고 무너지는 10대의 얼굴을 단단하게 표현한다.

신인들의 앙상블을 가능하게 한 주인공은 다름 아닌 배우 윤병희다.

사채업자 랑 역을 소화한 윤병희는 강진을 사채의 세계로 인도하는 안내자이자, 10대들을 범죄에 이용하는 악랄한 인물이다. 하지만 일면 아이들의 편인 듯 보이기도 한다. 관객까지 헷갈리게 하면서 영화에 긴장을 불어넣는다.

윤병희는 앞서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부터 드라마 ‘빈센조’를 거쳐 최근 ‘밀수’와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맹활약하는 진면목을 이번 ‘사채소년’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한다.

윤병희는 “영화에서 해야 할 역할이 또렷했다”며 “나쁜 어른을 대표하는 인물처럼 보여 자칫 심심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고 작업 과정을 돌이켰다.

감독: 황동석 / 출연: 유선호 강미나 유인수 이일준 신수현 이찬형 서혜원 윤병희 외 / 제작: 26컴퍼니 / 개봉: 11월23일 /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 105분

CP-2023-0089@fastview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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