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하반기 들어 고금리 상황이 심화하면서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량이 대폭 감소했다. 회사채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을 기피하거나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 대출이나 기업어음(CP, 단기사채 포함) 등의 단기 차입으로 선회했기 때문이다.
1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은 올해 총 47조2970억원 규모의 회사채(은행채·여전채 등 제외)를 발행했다. 이 중 상반기에 발행된 회사채가 35조6740억원으로 전체의 75% 이상을 차지한다. 하반기에 발행된 회사채는 11조6230억원으로 상반기의 3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기업들이 하반기에 회사채 발행을 대폭 줄인 결과다. 수년째 국내에서 가장 많은 회사채를 발행해온 SK그룹은 상반기에 7조914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이와 달리 하반기에는 2조6520억원어치만 발행하는 데 그쳤다. LG그룹은 상반기에 4조657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지만, 하반기에는 상반기 물량의 4%에 불과한 1700억원어치만 발행했다.
대기업그룹 중 하반기에 1조원 이상의 회사채를 발행한 곳은 SK그룹이 유일하다. 한화그룹(9900억원), 롯데그룹(8850억원), 포스코그룹(6550억원), 신세계그룹 6050억원) 등이 모두 1조원 미만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상반기에 대기업 중 두 번째로 많은 회사채를 발행했던 LG그룹은 하반기에 20위권으로 밀려났다.
회사채 발행 물량 급감은 하반기에 금리 상승이 이어지면서 기업들이 채권 발행 대신 대출이나 CP 등의 단기자금 조달로 선회했기 때문이다. 채권시장 관계자는 “하반기 들어 회사채 발행은 줄어드는 반면 다양한 형태로 금리를 낮출 수 있는 기업대출이나 CP 등의 단기 차입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상반기에 1조39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한 SK하이닉스는 하반기에 회사채를 발행하지 않았다. 대신에 CP 발행량(잔액 기준)을 4000억원에서 1조1000억원 수준으로 늘렸다. 상반기에 1조원어치의 회사채를 발행한 LG에너지솔루션도 하반기에 채권을 발행하지 않았다.
회사채 기피 현상은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일수록 더 심한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 위기, 이스라엘·하마스 쟁, 국내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 대유그룹 부도 사태 등으로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심화하면서 신용도가 낮은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지는 채권시장 양극화가 심화했기 때문이다.
IB업계 관계자는 “신용등급 A- 이하인 기업들은 회사채 시장에서 충분한 투자 수요를 모으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신용도가 낮은 기업들은 은행권 담보대출, 자산유동화, 유동화대출 등의 대체 자금 조달 수단을 활용해 유동성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내 주요 투자기관들이 올해 예정된 투자금을 대부분 집행하면서 12월에는 회사채 발행을 추진하는 기업이 많지 않다”면서 “채권 금리 변동성이 잦아들고 안정화되면 다시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을 늘릴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임정수 기자 agreme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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