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올 들어 네덜란드에서 반도체 장비 수입을 크게 늘렸다는 미 하원의 보고서가 나왔다. 미국의 대(對)중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 조치를 통해 ‘반도체 굴기’를 막아섰지만, 중국은 이를 우회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반도체 자립을 꺾으려는 미국의 수출 통제에 한계가 노출된 사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14일(현지시간) 미 하원 미·중전략경쟁특위는 대중 반도체 수출규제에도 중국 기업들이 첨단 반도체 생산을 위해 미국과 동맹국의 반도체 장비를 구입하고 있다며 이같은 내용을 담은 741쪽 분량의 연례 보고서를 발표했다.
중국은 반도체 장비를 국내로 반입하기 위해 글로벌 반도체 장비 강국인 미국, 네덜란드, 일본의 수출규제 도입 시차를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중국은 올해 1~8월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를 32억달러 가량 수입했다. 이는 1년 전 같은 기간의 17억달러 대비 96.1%나 증가한 규모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수출규제를 시행했고 이후 일본이 올 7월, 네덜란드가 9월 수출규제에 본격 동참했는데, 중국이 규제 공백 기간이었던 올 상반기를 활용해 집중적으로 반도체 장비 사재기에 나선 것이다. 올 8월까지 중국의 전체 반도체 장비 수입액도 총 138억달러에 달했다.
보고서는 대중 반도체 수출규제 조치에 상당한 허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미 상무부는 14나노(nm·1나노는 10억분의 1m) 이하 반도체 생산에 쓰이는 장비 수출을 금지했는데,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업체가 구형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장비를 가동하겠다고 주장할 경우 해당 장비를 중국 내로 반입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이 해당 장비를 첨단 반도체 생산에 쓰지 않았다는 사실도 추후 검증하기 어렵다고 봤다.
이번 보고서는 중국 화웨이가 지난 8월말 7나노급 반도체가 탑재된 스마트폰 ‘메이트60 프로’를 공개한지 석 달만에 나왔다. 당시 중국이 상대적으로 성능이 떨어지는 장비를 이용해 첨단 반도체 개발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중국은 미국의 반도체 제재 추가 강화에 대비해 반도체 장비 수입을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중국 해관총서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중국은 올해 3분기 반도체 장비를 1년 전보다 93% 늘어난 634억위안 가량 수입했다. 네덜란드로부터 들여온 장비 수입액이 6배 넘게 늘었다. 반도체 생산장비 중 노광장비 수입액은 4배 가까이 증가했다. 전 세계 노광장비 시장을 장악한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인 ASML도 올해 3분기 중국 시장 매출 비중이 전체의 46%에 달했다. 1년 전 14%에서 크게 늘었다. ASML은 대중 수출규제를 준수하면서 노광장비를 판매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시장에서는 중국 반도체 업체들이 네덜란드 장비 수입이 추가로 막힐 가능성을 예상하고 대규모 선주문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중국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인)SMIC의 기술력이 발전해 구세대 생산라인에서 쓰던 장비를 활용해도 첨단 반도체를 양산할 수 있다”며 “중국이 비첨단 노광장비를 추가로 구입하면 SMIC의 7나노 반도체 생산능력이 더욱 증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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