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정부의 내년도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에 반발한 과학계 달래기에 나섰다. 여당은 삭감된 R&D 예산 중 과학계의 우려를 고려해 기초연구와 장학금 지원 등과 관련한 예산을 보완하겠다는 입장을 되풀이하면서 세부적인 증액분을 밝히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은 20일 오후 국회에서 ‘미래세대를 위한 R&D 예산 관련 연구현장 소통 간담회’를 열고 10명의 박사과정생·조교수 등 신진 연구원의 의견을 들었다. 유의동 정책위의장은 이 자리에서 “내년 R&D 예산을 조정 및 편성하는 과정에서 미흡한 부분도 있었다”며 “현재 국회에서 예산 논의가 한창 진행되는 만큼 국민의힘은 오늘 연구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R&D 예산 삭감에 따른 부작용이 없도록 꼼꼼하게 챙기겠다”고 말했다.
젊은 연구자들은 내년 R&D 예산 삭감에 따라 대부분의 기초 연구 분야에서 인건비 부족 문제를 우려했다. 이준식 국민대 경영정보시스템학과 박사과정생은 “학생 인건비는 연구실 과제 수주 현황에 따라 큰 편차가 있다. 저의 경우 참여과제가 거의 없었던 석사 과정 동안에는 경제적인 이유로 학업 진행이 힘들었던 경험이 있다”며 “성과 우수 연구실이나 유망 분야에 대한 집중 지원도 중요하지만, 현재 태동 중인 신생 분야나 연구실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망 차원에서 인큐베이팅 제도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박주찬 서울대의학연구원 의학연구소 박사후연구원 또한 “학생들의 인건비, 등록비와 생활비는 거의 연구비에 의존한다. 개별 연구실의 연구비 사정이 어려워지면 학생이 학업을 지속하기 어려워진다”며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학생 인건비가 연구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학생 인건비나 등록비가 장학금 형식으로 많이 지원된다면 자라나는 미래 연구자가 안정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안전망으로 작동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여당은 연구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R&D 예산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예산 심사에 임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수치나 분야를 밝히지는 않았다. 유 의장은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연구자들과)충분히 교감했고, 약간의 서로 오해가 있었던 부분도 있었다”며 “정책적으로 좀 더 보완해야겠다는 것도 인식했고 충분히 최종 예산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반영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구체적인 예산 증액분은에 대해선 “오늘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위가 아니고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라며 “그것에 대한 입장을 밝힐 수 있는 자리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또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예산 증액에 대해서도 “이 자리에서 숫자를 말하기는 어렵다”면서 “야당과 여당이 늘 같은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다. 저희가 많다고 하면 그쪽이 적다고 하는 것이니까 어느 시점이 되면 균형을 맞추게 돼 있다. 그때까지 저희한테 시간을 좀 달라”고 했다.
여당이 과학계 의견 청취 등 R&D 예산 보완 의지를 드러냈지만, 실제 예산에 어느 정도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거대 의석을 가진 야당은 이미 전날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위원회에서 단독으로 R&D 분야에서 8000억원을 순증한 예산안을 의결했다. 국민의힘은 정부안과 마찬가지로 긴축 기조로, 불필요하게 지출된 예산을 효율적으로 배분한다는 ‘재구조화’에 방점을 찍고 있어 예산을 순증한 민주당의 예산안 의결에 반발하고 있다. 예결위 소위 협의 과정이 남아있지만, 소위 위원 구성에서 야당(9명)이 여당(6명)보다 앞서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여당의 의견이 얼마나 반영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영원 기자 fore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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