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25년 대학 입시부터 의대 정원 확대를 위한 밑그림 작업에 한창인 가운데 의료계에선 전운이 감돌고 있다. 정기 휴진 등 첫 집단행동에 나선 의사단체도 나오면서 긴장감을 더하고 있다. 정부가 전국 의과대학들의 희망 증원 규모에 대한 조사를 일주일 전 끝마쳤지만, 구체적인 발표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 눈치보기에 정책 추진 동력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다.
17일 보건복지부는 전국 40개 의과대학을 대상으로 한 증원 수요조사 결과 발표 일정을 아직 잡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는 지난 9일까지 2주간 의과대학별로 2025~2030년 정원 희망 규모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 원래 13일 결과를 발표하려 했지만 ‘이번 주 내 발표’ 로 계획을 미룬 바 있다. 2030년 의대 정원 증원 수요조사 규모는 3000명 후반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요조사는 희망 인원에 불과하지만 “수요조사 결과로 의대 총정원을 결정해선 안 된다”(한국의학교육협의회)는 의료계의 불편한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15일 열린 의료현안협의체에선 정부와 대한의사협회 측의 입장차만 재확인했다. 17번째 만남에도 정부는 ‘2025년도부터 의대 정원 확대’를, 의협은 ‘의대 정원 증원=포퓰리즘’이라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날 협의체는 의협 측 협상단장이던 이광래 인천시의사회장 사퇴 후 양동호 광주광역시의사회 대의원회 의장이 협상단장으로 선임된 이후 처음 열린 자리다. ‘강경 노선’이 더 짙어졌다는 평가다.
의협은 2020년 의료계 총파업 이후 맺어진 ‘9·4 의정 합의’를 위반할 경우, 이를 넘어서는 강경 투쟁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정경실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의협이) 국민의 요구를 등한시하고 의사 인력 확충을 막는다면 ‘직역 이기주의’라는 국민의 비판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기 휴진을 벌이겠다는 의사단체도 처음 나왔다. 경기 지역 의사들 단체인 경기도의사회는 매주 수요일 오후 반차를 내는 등 휴진하고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투쟁 집회를 벌인다고 밝혔다. 회원 50~100명이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계 관계자는 “의료계 논의 없이 의대정원 확대 문제를 밀어붙이기만 한다면 집단행동을 벌이는 의사단체는 더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의료계 반발이 이어지면서 복지부가 의대별 정원 수요조사 결과를 공표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렇게 되면 적어도 내년 초까지 2025년도 의대정원을 확정해야 하는 정부가 의료계 눈치에 정책 추진 동력을 잃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한다.
의료계는 재차 ‘선(先) 필수의료대책 마련, 후(後) 의대 정원 확대 논의’라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정부는 의대 정원 증원과 함께 정책 패키지로 의료인 법적 부담 완화, 고위험·고난도 수술 수가 인상 등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소아·분만 수가 개선 방안도 시행된다. 의료 인력이 지역·필수의료 분야에 투입되도록 하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는 의료계 제언을 받아들인 데 따라서다.
다만 의대정원 확대를 위해 얼마나 더 필수의료대책이 마련돼야 하는지에 대한 정부와 의료계 간 입장 간극이 좁혀질지는 미지수다. 복지부 관계자는 “앞으로 의사 인력이 부족해질 것이라는 현실이 여러 통계로 드러난 만큼 의료계의 전향적인 입장 변화를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변선진 기자 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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